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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 편혜영
황시운 | 승인 2012.11.28 |(0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나는 일 년 반째 병원생활 중이다. 충분히 짐작 가능 하겠지만 병원 생활이라는 것이 지루한 일상의 반복에 다름없다. 똑같은 시간에 기상해 정시에 약을 먹기 위해 맛없는 밥을 억지로 먹고 똑같은 스케줄에 맞춰 치료와 휴식을 반복하다 매일 똑같은 시간에 잠든다. 때문에 이곳의 환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지겹다, 심심하다란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병원생활을 하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매일매일 오늘은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상의 지루함을 견뎌왔던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병원생활을 미치도록 지루해 하면서도 병원 밖 세상에 대해선 극도의 공포감을 갖고 있는 이곳 환자들과 나 역시 그다지 다르지 않다. 오늘 소개할 편혜영의 소설집 ‘저녁의 구애’ 속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다.

   
 
구내식당의 정식 A세트를 기준으로 그의 하루는 데칼코마니처럼 오전과 오후가 동일하게 반복되었다. 오전과 오후뿐만이 아니었다. 자정을 기준으로 하면 어제와 오늘이, 주말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주와 이번 주가, 연말을 기준으로 하면 작년과 올해가 같았다. 그러므로 모든 미래는 과거와 동일한 시간일 것이다. 현재가 과거와 같듯 미래는 현재와 같을 것이다. 언제나 같다는 것. 그 때문에 그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으나 이내 언제나 같아서 다행이라 생각하면 한숨을 거둬들였다. <동일한 점심, P.83>

 남자의 ‘데칼코마니’처럼 똑같은 일상에서는 알 수 없는 공포감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우리들의 일상이라는 것 역시 다 이런 식이다. 그리고 그런 일상에 문득문득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남자와 같은 안도감을 느끼기도 한다.

<통조림 공장>의 인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하루 세끼의 반찬을 모두 통조림으로 때우고 입가심은 물론 술안주마저도 통조림으로 해결한다. 뿐만 아니다. 동일한 시간에 공장의 기계를 켜고, 동일한 것들을 통조림에 담는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고등어나 꽁치의 대가리를 내리치고 누군가는 손가락으로 생선의 내장을 훑어 내며 또 다른 누군가는 종일 통조림 박스를 포장할 것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 해도 시스템은 전혀 타격을 받지 않고 동일한 나날들은 줄기차게 계속된다. 소설 밖 우리들의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사라진다 해도 세상은 조금의 변화도 없이 동일하게 돌아갈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세상을 지배하는 동일성의 법칙 앞에서 개인의 존재는 무의미하게 여겨질 정도이다.

<토끼의 묘>와 <정글짐>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토끼의 묘와도 같은 세상에서 파견근무자들이 근무기간 동안에만 기르다 버리는 토끼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을 삶을 살아간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며 똑같은 일상을 반복하지만 사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는 체 시스템의 일원으로 묵묵히 살아간다. 그러다 자신의 존재가치마저도 희미해질 즈음에서야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며 공포감에 휩싸인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공포스럽게 만드는 도시에서의 삶에 안주하며 그 속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쳇바퀴 돌 듯 동일하게 반복되는 삶으로부터의 이탈은 더 큰 불행을 자초하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동일하게 반복되는 삶은 지옥에 다름없지만 그 밖의 세상은 정체를 짐작키 힘든 거대한 늪과도 같은 것이다.

편혜영의 소설 속에는 우리를 공포로 몰아넣는 세상의 법칙이 매우 그로테스크하게 그려져 있다. 불필요한 비유나 수사를 지양하는 그녀의 문장은 그러한 공포감을 극대화 시킨다. 소설집 ‘저녁의 구애’에 실린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그녀는 전작들(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재와 빨강)에서 보여주었던 공포의 실체를 보다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그녀의 소설 속 세상은 동일성의 법칙이 지배하는 지옥과도 같다. 그러나 소설 속 인물들은 동일성의 법칙이 존재하는 도시에서의 삶에서 쉬 벗어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러한 삶에 안도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소설집 ‘저녁의 구애’를 읽다보면 그녀의 소설 속 세상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너무도 같아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고 만다. 그런 자각으로 독자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이야기, 그것이 바로 편혜영의 소설이다.

황시운  작가, 수학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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