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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탈로 쌓은 부와 문화재를 보관하던 구 일본인 농장 창고
송석기 | 승인 2012.11.14 |(0호)

군산대학교 정문에서 우회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옥구의 넓은 논, 밭이 펼쳐진다. 군산대학교가 시가지 외곽에 위치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산업도로를 따라 달려보면 아파트가 보이는 군산시의 모습은 이내 사라지고 넓은 평야가 개정과 대야를 거쳐 김제로 이어지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만큼 군산은 주변으로 넓은 평야지대에 둘러싸여 있다. 이 넓은 평야지대를 배경으로 근대 초기 군산에는 수많은 일본인 농장들이 생겨났다. 일본인들은 개항을 전후하여 군산에 들어왔고, 온갖 방법으로 논, 밭을 차지하고 농장을 개설하였다. 군산을 포함한 전북 지역의 농장은 전국 그 어느 곳보다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군산 주변에는 일본인 농장과 관련된 다양한 근대 유산들이 산재해 있다. 이러한 농장과 관련된 유산 중 독특한 건축적 형식을 보여주는 것이 발산초등학교 뒤 마당에 있는 구 일본인 농장 창고 건물이다. 이 건물은 원래 이곳에 자리하고 있었던 시마타니 농장의 부속 건물로 농장의 각종 서류와 현금, 고 미술품 등을 보관했던 귀중품 창고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대기 수탈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축물로서 2005년 ‘구 시마타니 농장 귀중품 창고’라는 이름으로 국가 등록문화재가 되었다. 몇 년 전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명칭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본인 이름을 빼고 ‘구 일본인 농장 창고’라는 현재의 이름을 갖게 되었다.

구 일본인 농장 창고는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진 반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축물이다. 3개 층을 일체형의 구조물로 만들었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하고 있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 놓아 2중의 방범 장치가 되어 있다. 또한 1층의 출입문은 미국에서 철로 제작된 육중한 금고 문을 달아 놓았다. 1층에 출입문이 금고와 같은 형식의 문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에서는 ‘발산리 금고’ 또는 ‘시마타니 금고’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반 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구 일본인 농장 창고와 같은 건축물은 일본 전통 건축에서 ‘도조(토장, 土蔵)’나 ‘구라(창, 倉)’라 부르는 창고로서 귀중품을 보관하기 위해 화재와 도난 등을 막을 수 있는 구조와 재료로 건축되었다. 처음에는 흙벽을 두텁게 쌓아 만든 창고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토장이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돌로 만든 경우에는 석장과 같은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이후 일본식 성곽 건축 기법 등을 받아들여 방화와 방탄 성능을 갖는 형태로 발전하여 부의 상징이 되었다. 근대 초기에는 새로운 근대적 건축 재료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구 일본인 농장 창고는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한 건축물로 이러한 유형 중 가장 근대화된 형식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군산에는 이러한 형식의 건물이 여럿 남아있다. 이전에 히로쓰 주택이라고 불렸던 신흥동 일본식 가옥이 대표적이다. 건물 본채의 일부로서 창고 건물이 만들어져 있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구 시청 뒤쪽에 위치한 일본식 주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집에서는 이 창고를 개조하여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주택이 아닌 일반 건축물에서 창고가 나타나는 사례도 있다. 내항의 구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에서는 주 영업장의 뒤쪽으로 금고 건물이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벽돌 건물로서 화재와 도난을 막는 기능을 강화하기 위하여 새로운 근대 재료를 도입한 것이다. 그런 장점으로 이 금고는 한 때 무기고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본에서처럼, 이러한 창고가 부의 상징으로 여겨졌다면, 근대 초기 군산에서도 수탈을 통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문화재를 수집한 많은 일본인들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에서 이러한 건축물을 경쟁적으로 지었을 것이다. 새로운 근대 재료를 사용하여 육중하고 튼튼한 형태로 지었던 것은 한편으로는 실용적인 목적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했던 의도가 선명하게 표현된 건축물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건축물은 대규모 농장을 중심으로 농업에서의 수탈이 가장 심했던 전북 및 군산 지역 근대사를 잘 보여주고 있는 건축물이기도 하다.

송석기  건축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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