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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다문화적 전환’과 지역사회의 역할
황정미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 승인 2011.04.06 |(0호)

한국 사회에서는 오랫 동안 민족 동질성과 단일민족에 대한 믿음이 당연시되어 왔다. 그런데 최근 전지구화(globalization)의 확대에 따라 국경을 넘는 인적?물적 교류가 증대하고 특히 1990년대 이후 국내에 머무르는 이주민의 수가 급증함으로써 새로운 다문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한국에 체류 중인 외국인의 수는 2010년 6월을 기준으로 120만 명을 넘어섰다. 법무부의 자료에 따르면 체류 목적이 취업이 외국인은 556,948명(46.1%), 결혼이민자 136,556명(11.3%), 외국인 유학생 82,096명(6.8%)의 순서로 나타난다.  이처럼 외국인 노동자, 곧 이주 노동자가 체류 외국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최근 들어 유학생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추세도 눈에 띈다.  또한 한국에 장기체류(91일 이상)하고 있는 등록외국인은 87만 여명에 이른다.  1992년 6만 5천여명에 불과했던 국내 거주 등록외국인이 17년 동안 13배 이상 증가한 셈이다.  국적별로는 중국이 55.4%(485,667명)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다음으로 베트남(89,024명), 필리핀(38,971명), 미국(31,535명), 타이(27,835명) 순이다. 거주 지역을 보면 주로 경기(269,679명), 서울(253,392명) 등 수도권에 65% 이상 집중되어 있다.
이렇게 한국에서 일정 기간 거주하거나 영구 이주하는 외국인들이 증가함에 따라 “다문화”라는 표현은 이제 한국 사람들이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라는 용어의 의미는 명확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이주민 관련 정책이나 연구 문헌에서 ‘다문화’라는 수식어가 많이 등장하지만, 그러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를 공식적인 정부의 입장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1970년대 캐나다와 호주에서 등장한 다문화주의 정책은 대량 이민을 수용하는 이른바 ‘이민국가’의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며, 인종?민족적 출신에 따라 상이한 이주공동체 및 원주민 공동체의 문화적 자율성을 존중하고 고유문화의 보존 및 발전, 이중 언어 또는 다언어 사용을 승인하는 정책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현실은 이러한 이민 국가와는 상당히 다르다. 1970년대까지도 한국은 노동력을 해외로 보내는 송출국이었으며, 외국인 노동자가 국내로 유입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올림픽 이후다. 또한 국제결혼을 통해 이주한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도 2000년대로 접어든 다음이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한국에서 사용되는 “다문화”는 인종?민족적 출신배경이 상이한 이주민 공동체를 존중하는 다문화주의라기 보다는, 점차 증가하는 이주민과 외국인을 한국사회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민족?문화적 동질성에 대한 재성찰을 촉구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사실 많은 한국인들은 다문화라는 용어를 곧 ‘다문화가족’의 동의어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하고 있다. 한국인과 외국인의 국제결혼으로 구성된 가족을 지원하는 법률의 명칭이 ‘다문화가족지원법’이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그러나 국제적으로 다문화 혹은 다문화주의라는 용어는 국제결혼이나 혼혈 아동 뿐 아니라 이주 노동자, 난민, 소수민족, 원주민 등을 모두 포괄하는 의미로 쓰인다.
한국사회 특징은 산업화나 도시화, 고령화 등이 그러했듯이 다문화 사회로의 변화 또한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장기적으로 본다면  혈통적 민족을 오랫동안 동일시 해온 한국인의 가치관은 더 이상 견고하게 지속되기 어려우며 다양한 민족?인종적 배경을 지닌 시민들로 구성된 새로운 사회상이 서서히 등장할 것이다.
한국의 법과 제도는 최근까지 이민을 사실상 인정하지 않는 ‘배제주의’에 머물러 있었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 결혼이주여성 등 특정 대상에 대한 지원 정책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보다 포괄적인 ‘외국인 정책’ 또는 ‘이민 정책’으로 수렴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사회정책 안에 다양성 내지 다문화의 가치를 흡수하여 포괄적인 ‘다문화 사회정책’의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특정 외국인, 특정 이주자를 대상으로 하는 정책의 수립을 넘어서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공존하는 사회에 적합한 사회정책의 새로운 원리를 확립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 기본 방향은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첫째, 다문화 사회정책은 다원적 민주주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의 성숙이라는 차원에서 설계되어야 한다. 외국인 이주자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보다 성숙된 사회통합의 원칙을 확대하는 것을 지향한다면, 이주민 뿐 아니라 다른 소수자의 삶의 질 향상에도 기여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국제결혼 가정의 아동들을 고려한 학교의 다문화교육 프로그램은 단지 특정 집단에 대한 배려를 넘어서서 모든 학생들의 다문화 소양을 넓히고 이들을 ‘다문화적 시민(multicultural citizen)’으로 양성하는 것을 지향해야 한다. 
둘째, 다문화 사회정책에서는 무엇보다도 ‘참여적 문화 정책’의 역할이 중요하다. 기존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외국인이나 이주자에 대해 비교적 사회적 거리를 많이 느끼고 있으며, 또한 다른 문화에 대한 관심은 영어권 등 선진국에 쏠려 있어 이웃 아시아 지역이나 이주민들의 출신국 문화에 대해서는 관심도가 높지 않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지적 차원에 아니라 정서적 차원의 접촉이 요긴하며 일상 안에서 다른 문화를 접하는 체험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채널의 문화 교류, 특히 민간 차원의 문화교류 기회를 늘리고, 접촉하는 외국문화의 범위를 지금보다 다양화?다변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이주자와 한국인이 생활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만나고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함으로써, 경험을 통해 다양성의 가치와 중요성을 체득할 수 있는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들이 개발되어야 한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노인 등 집단의 특성에 맞는 다양한 문화접촉의 기회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다문화 사회정책은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맞물릴 때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중앙 정부는 국제적 기준에 부합하는 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지방 자치단체는 지역현실에 근거하여 새로운 변용과 확대를 시도하며, 다양한 민간 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각종 네트워크를 활발히 증식시키는 흐름들이 결합되는 것이 필요하다. 민간 주체들의 자발적 참여를 기대하기 위해서는 아동기부터 다양한 통로를 통해 다문화 시민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의 활성화는 시민의식의 고양 없이는 기대할 수 없으며, 시민의식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주민과 접촉이 이루어지는 현장은 지역사회이며 지역 공동체 수준에서 다문화 이해를 넓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다문화 공생’ 정책을 지역차원에서 실행에 옮기고 있는 일본의 사례를 보면, 지자체에서는 재정 지원 및 공간, 프로그램 기획과 같은 기본 인프라를 제공하고, 일본어 교육 등에는 시민들이 자원활동으로 참여하는 프로그램들이 많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정책의 비용절감이나 실효성 제고 뿐 아니라, 이주자나 문화 다양성에 대한 인식을 풀뿌리 수준으로 확산시키는 차원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자원활동의 체계적 운영과 네트워크 확대는 지역 주민들에게 보람 있는 사회참여 기회를 제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지역사회를 활성화시키는 다양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장기적인 본다면 이주자들의 한국사회 적응을 지원하는 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한국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주민들이 취업이나 지역사회활동 등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역량개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스스로 자조활동을 할 수 있는 동아리, 커뮤니티 형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일본 가와사키시의 경우 ‘외국인대표자회의’(임기 2년)를 구성하여 외국인 지원 정책에 관한 의견을 시장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의 일부 지자체에서 도입하고 있는 외국인대표자 회의는 외국인들의 정책에 대한 의견 수렴의 효과가 있을 뿐 아니라, 외국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보다 적극적인 활동을 하도록 유인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외국인대표자회의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은 이후 자원봉사단체나 다양한 민간단체를 조직하여 지역사회에 활력을 불어놓고 다양한 국가?지역 출신 이주자들의 사회통합에 기여하는 사례들이 많다.
한국사회의 ‘다문화적 전환’을 좀 더 긴 호흡, 넓은 시야에서 조망하면서  단편적? 대증적 정책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다문화 정책은 이주민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한국사회가 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바뀌고, 한국인들이 보다 관용적인 시민의식을 획득함으로써 다양성을 포용하는 민주사회로의 변화를 지향해야 한다. 이러한 원칙은 지역사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이주민의 정착 및 생활 안정을 지원하고 더 나아가 다문화 이해를 증진하는 다양한 정책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사회 전체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아래로부터 다양성을 포용하는 지역사회 정책을 더욱 확대되기를 기대한다.

황정미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  han@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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