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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축제의 사회사엉거주춤 기성세대가 스마트세대에게 하는 말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1.05.18 |(0호)

대학의 사회적 위상에 대해서 이리저리 말이 많다. 사실 기성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것과 같이 당연히 가져야 할 위상은 영향력을 상당한 정도 상실한 것이 아닌가라는 자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어디서부터 대학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본 글의 주요 주제는 아니지만, 이 문제를 진단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대학문화의 변천사를 대학축제의 사회사와 연관시켜 다뤄보고자 한다. 축제란 사회구성원의 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볼 때, 대학축제 또한 대학의 주요 구성원, 즉 대학생들의 문화를 반영하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7~80년대의 대학생들은 사회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표명하였다. 즉 정치적인 성격을 띠거나 소외받은 계층 혹은 사회적 흐름에 자연스럽게 따라가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를 옹호하는 대변자적인 입장에서 구조적인 문제를 비판하는 것이 대학생들의 소임이라고 여겼다.
우선 70년대에는 그래도 대학생활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어울렸다. 기성세대의 억압과 위선 등에 나름대로 저항하면서 장발과 청바지를 즐겼으며, 미니스커트는 저항의 의미로 해석되었다. 즉 ‘자유가 곧 저항’이라는 인식하면서 규칙을 벗어던지려 애썼다. 세상에 대한 은근한 분노를 맥주 한잔과 통기타 음악소리로 날려보내려 했다. 당시에는 이러한 저항이 ‘~~패’, ‘~~연구회’ 등으로 불리는 단체를 통해서 문화저항으로 왕성하게 표현되었다. 이들은 노래, 민속, 풍물, 탈춤, 인문학 등을 주요 소재로 활동하는 공동체 집단이었고, 대학마다 대표적인 단체가 왕성하게 활동하였고, 여기서의 활동경력은 향후 사회활동을 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들이 현재에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맥을 잇고 있음이 도처에서 발견된다.
당시 대학축제의 대표 프로그램이었던 쌍쌍파티에 동행할 파트너를 미리 구하기 위해서 축제 전에는 미팅을 뛰어다니느라 바빴고, 한창 인기를 누리던 통기타 가수들과 한마음이 되어 노래를 부르는 기분도 즐거웠다. 70년대 대학축제는 과나 동아리별로 체육대회, 시화전이나 미전을 벌이거나 강연회 등을 여는 것이 주요 행사였다. 이 시기의 대학축제는 유희성과 놀이, 그리고 비일상성의 특성이 부각된 시기였다.
80년대로 넘어가면 분위기는 좀 험악해진다. 괜히 386세대라는 말이 나온 것은 아니리라. 당시 대학생들은 최소한의 대학 속의 낭만은 커녕(대학의 낭만이란 애초부터 없는 것일 수도 있다!), 캠퍼스 벤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복경찰들을 보며 몸을 사리던 시대를 살아내야 했다. 당연히 당시 대학생들에게 대학문화는 “항쟁의 이름으로” 매번 날 좋은 봄 가을 대동제시기에는 독재타도를 외치며 꽃향기가 아니라 최루탄 냄새에 코를 틀어막고 이리뛰고 저리뛰었던 기억만이 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당시의 대학의 역할은 적극적인 저항의 몸짓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대학생들은 최루탄과 곤봉, 무장한 경찰에 맞서는 것으로 그들의 ‘힘’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그 저항의 대상은 단순한 공권력이 아닌 “정의롭지 않은 것”이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대학가의 다양한 동아리활동은 활발하였다. 따라서 저항적인 공동체의식은 소비대중문화를 대학사회에서 철저히 배격하였고, 대학 안에서는 노래, 공연, 마당극, 영화 등이 학생운동을 위한 주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당시에는 다양한 민중문학과 민중가요가 풍미하였으며, 새로운 관점의 소설, 철학, 문학들이 대학생들에게는 필독서로 장려되었다. 80년대의 대학축제는 축제의 여러 특성 중 유독 저항(抵抗)과 전도(顚倒), 즉 세상을 비딱하게 비뚤어보기의 특성이 유독 강하게 부각되었던 시기였다.
90년대의 대학문화는 ‘신세대의 도전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민주화가 진전되고, 문민정부가 등장하였으며, 신세대가 출현하면서 상업적인 소비사회로 빠르게 진입하였다. 공동체를 강조하던 80년대와 달리 90년대는 개인의 역량과 특성이 강조되었다. 따라서 축제를 비롯한 놀이문화의 특성 또한 변화하게 된다. 노래방이나 비디오방 등 젊은이들에게 ‘방문화’는 개인주의적인 것을 표상하는 것으로 부상하였다. 사람과 사람의 직접적인 교류가 아니라 매체를 통한 교류, 즉 대중매체를 통해 생산되는 문화를 공유하는 대중문화가 대학문화를 빠르게 접수하였다. 반면에 신세대의 의식은 빠르게 확산되어 다양한 차원의 소수문화에 몰입하면서 새로운 대학의 대안문화를 찾기에 열광하였다. 동시에 인문학의 시대는 저물어 갔고 인터넷 시대가 왔으며, 공동체 시대는 가고 마니아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렇게 맞이한 90년대는 대중문화가 사회와 대학을 장악하였으며, 이념을 상실하였고다. 대학문화의 정체성이 위협당하면서 실험성이라든가 전위집단으로서의 색깔과 차별성을 상실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90년대는 무엇보다도 사회의 거대한 자본이 만들어낸 상품을 대학의 지적 성과물이 이기지 못하는 자본의 문제로 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90년대의 대학축제에서부터 서서히 현란하고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하는 대중문화가 대학축제의 무대 중앙으로 들어오게 된다. 동시에 축제는 거나한 술판이 벌어지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2000년을 넘어서면서 휴대폰에 이어 스마트폰 시대에서 쇼셜 네트워킹은 이제 존재를 위한 필수적인 항목이 되어가고 있다. 타인과의 관계맺음이 중요해진 것만은 사실이나, 디지털 테크놀로지로 매개된 관계맺음이 우선적인 방법이 되었다. 이 관계는 일방적·간접적·은유적 연계망이다. 각 개인이 가진 요구사항의 표출에 용이하고 이에 대한 불특정 다수의 반응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감이나 의무사항에 대한 준수의식은 미약하다. 여전히 남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대단히 많을 뿐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왕따가 되는 것은 두려워하면서도 타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지도 않는다. 당연히 대학 내 동아리 활동에는 관심이 없으며 같이 모여서 무엇인가를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서 하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같이 모여 앉아서 각자의 스마트폰에 몰두하는 기현상을 보인다. 아이돌그룹이 등장하지 않은 축제는 이제는 시시한 것이 되어버린 지 오래다.
당연히 2000년을 십년 이상이 훌쩍 넘겨버린 지금, 우리의 대학문화의 정체성이 희미해서 도대체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니, 대학축제 또한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의 작은 불꽃이 타고 있는 것 같아서 크게 한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외국유학생들이 많은 대학에서는 다문화축제를 통한 다양한 문화의 이해의 장을 만든다거나, 다양한 기부문화를 전파시키기 위한 나눔의 장을 만든다든가, 영상세대의 장기를 마음껏 발휘하는 학생들이 새롭고도 파격적인 그들만의 고유한 시각으로 만든 영상제를 진행한다든가.... 등등.
나는 아직도 대학생은 기성세대와는 뭔가 상당히 달라고 달라야 한다는 “꿈”을 버리지 못하고 엉거주춤 뻘쭘하게 살아가는 기성세대이기 때문일까?

류정아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연구위원)  for_truth@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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