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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길은 몽골거리며 몽골스럽게 내앞에 있다
임정희(경제학·3) | 승인 2015.09.02 |(0호)

2015. 7. 20 (월) 출국일

     
 
비행기 출발은 언제나 나에겐 가슴 설레는 일이다.
일정이 정말 빡빡했던 하루였다. 울란바토르 공항에 내려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과 만나 신기함을 만끽함과 동시에 발자언니를 만났다. 작년 3기 사람들로부터 많이 들었던 사람이다. 앞으로 2주 동안 이분과 함께 있을 생각에 더 궁금해지는 분이다.
몽골공항에서 우리가 묵을 호텔로 이동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비가 왔다. 발자언니는 몽골에서 비가 오면 누군가를 환영하는 의미라고 했다. 이 빗방울들이 우리를 환영해주는 걸까? 앞으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펼쳐질까. 이 빗방울들처럼 몽골아이들이 우리를 환영해주었으면 좋겠다.
비는 금방 그쳤고 울란바토르 시내를 구경했다. 생각보다 아주아주 발달되어 있었다. 난 몽골은 지평선이 보이지 않는 초원에 게르 뿐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에, 몽골의 시내 모습은 나에게 큰 놀라움이었다. 생각보다 크고 많은 빌딩들에 수많은 개인차와 버스들, 또한 매우 많았던 한국 음식점들 때문이었다.
이제 2주간 크게 각인이 되었던 만남이 시작된다. 바로 양고기와의 첫 만남이다. 난 원래 가리는 것 없이 뭐든지 잘 먹는 편이라 이번에도 아무 거리낌 없이 양고기미트볼을 한입에 넣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큰 오산이었다. 아직도 그 특유의 역한 냄새를 잊을 수가 없다. 한입 베어 문 후, 더 이상 씹을 수 없을 정도로 양고기의 냄새는 나를 참을 수 없게 했다.

2015. 7. 21 (화)

   
 
종머드 중학교 기숙사에 도착했다. 시설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우리는 바로 중학교로 향했고 학교 밖 벤치엔 여러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이때는 이 아이들과 이렇게 친해질 줄 몰랐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아련하다.
내일은 우리 팀이 교육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아이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 우리의 교육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우리의 진심이 잘 전해질 수 있을까? 걱정과 기대가 동시에 나를 흔드는 밤이다.

 

2015. 7. 22 (수)

     
 

아침 6시 반에 기상해서 세면대에서 찬물로 머리를 감았다. 찬물이라 부르지만 얼음물처럼 느껴졌다! 이런 경험, 또 언제 해볼 수 있을까.
우리 팀이 첫 교육프로그램을 했다. 어제는 아이들과 말이 잘 통할까 걱정했었는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통역사 선생님이 잘 도와주셨기 때문이고 아이들도 잘 따라와 주었으며 우리 팀의 팀워크도 효과를 발했다.
아이들에게 교육했던 이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했는데, 난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도움이 될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다. 가슴 속에서 뭐랄까 따뜻한 기운과 함께 열정이 생겨나는 걸 느꼈다. 특히 아이들이 순수한 눈빛으로 날 바라보며 웃어줄 때 나는 너무나도 행복했다.
오늘은 데칼코마니와 딱지 접기, 바람개비 만들기 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내가 준비한 프로그램이었던 데칼코마니. 손쉽게 준비했던 프로그램이었는데 생각보다 매우 재밌었고 흰 도화지 위에 알록달록한 색의 조화가 내 눈과 아이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딱지 접기는 아이들에게 접는 법을 알려주기도 전에 아이들이 척척 잘 접어내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다음 바람개비 만들기도 아이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교실에서 만든 후 밖에 나가서 돌리는데 아이들이 어찌 그리 좋아하던지 그 표정들을 잊을 수가 없다.

2015. 7. 23 (목)

     
 

태권도 팀이라는 이름하에 태권무와 격파를 우린 참 열심히 준비했었다. 노래설정부터 안무연습, 위치와 동작 등 모든 것을 팀원이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며 준비했다. 그렇게 준비한 태권도를 오늘 아이들에게 처음 보여준 날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랜만에 도복을 입는다는 것도, 오랫동안 준비한 걸 아이들에게 보여준다는 것도 매우 설렜다. 준비한 만큼 잘했다고 느꼈는데 아이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궁금하다.
오후에는 노력봉사로 풀뽑기를 했다. 처음에는 이 풀뽑기라는 활동이 정말로 의미있는 일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 일이 정말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인지, 몽골 종머드 이곳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인지 생각해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뽑는 풀이 독초라는 걸 알게되고는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평소에 길을 지날 때 향이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풀이 독초였었고 그 풀에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있어 아이들에게 좋지 않다고 했다.
오늘 하루 중 가장 즐거웠던건 요리했던 시간이었다. 40명을 위한 무려 네 시간 동안의 준비. 야채를 씻고, 썰고, 볶고, 탕에 넣고. 하나씩 배워나갔다. 요리와는 전혀 친하지 않았던 내가,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두 눈으로 보고 경험하니까 다 만들어진 후, 더욱 맛있게 먹게 되었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2015. 7. 24 (금)

     
 

지금까지 중 가장 힘들었던 하루. 교육프로그램을 하는데 너무 힘들었다. ‘망치린 히드’라는 국립공원에 다녀온 후 점심을 늦게 먹고 바로 수업에 들어가서 아이들은 우리를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고 우리의 수업준비는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었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이 된 수업. 열정이 많은 아이들 이었기에 쉽게 통제가 되지 않았고 준비했던 우리의 수업재료는 생각보다 열악했다. 물론 무사히 잘 끝내긴 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수업이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몽골에 오기 전에 교육프로그램보다는 태권도 안무연습에 더 중점을 두고 시간을 쏟으며 연습했었다. 그런데 오고 난 뒤 잘못되었다고 느꼈던 것이, 우리는 안무연습보다는 교육프로그램에 더 중점을 두고 연습했었어야 했다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태권무를 보여주는 것보다 교육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시간이 훨씬 많았고, 아이들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물론 태권도와 교육, 둘 다 중요하지만 시간과 연습의 비중을 태권도보다는 교육에 더 두었어야했다. 그 점이 매우 아쉽고 후회로 남는다. 미리 알았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2015. 7. 25 (토) 

   
 

 자꾸만 회의감이 든다. 난 정말 봉사할 자격이 있는걸까. 여기에 와서 보니 내 존재는 너무나 보잘 것 없었다. 난 아직 배움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았고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가서, 여기서 느낀 나의 한계를 상기시키며 부족한 면을 많이 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2015. 7. 26 (일)

     
 

사람의 마음은 정말 신기한 것 같다. 이곳에 와서 참으로 소중한 경험을 했다.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말이 아닌 마음으로 서로의 믿음이 전달되는 경험. 나는 지금까지는 사람은 대화를 통해야만 교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곳에 처음 와 아이들을 만났을 때, 하나도 통하지 않는 말에 너무도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느꼈다. 나는 이 아이와 너무나도 말하고 싶은데 그렇지 못했을 때의 아쉬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몽골 종머드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음으로 대화하는 법을 익히게 된 것 같다. 이 아이를 향한 나의 진심이 눈빛으로 전달되었고, 나를 향한 그 아이의 마음을 표정으로 전달받았다. 너무나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었다.

2015. 7. 27 (월)
          

종머드 중학교와의 아쉬운 이별을 뒤로하고 유치원으로의 이동.
수많은 감정들이 담긴 이곳. 언제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곳이라고 생각하니 눈물이 고였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학교 교실, 영양사 선생님을 도와 친구들과 함께 음식조리를 하던 학교 주방, 몽골 아이들과 손을 맞잡고 ‘우리집에 왜왔니’놀이를 하던 초원 위, 이른 아침 발뒤꿈치를 들며 세면대에 머리를 박고 찬물로 머리감던 기숙사, 함께 팀 회의를 했던 딱딱했던 침대. 하나도 빠짐없이 잊혀지지 않을, 잊혀 질 수 없는 추억의 장소들. 만약에, 아주 만약에 나중에 이곳을 다시 와보게 된다면 그때 내가 마주할 감정들은 어떤 것들일까.

2015. 7. 28 (화)

       
 

피곤했지만 마음은 피로하지 않았던 하루.
유치원에서의 첫 봉사날 이었다. 유치원 벽과 창문을 닦았고, 그 후엔 카메라를 맡아 친구들의 청소하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이곳 유치원은 한 부모 가정에 있는 아이들이나 고아인 아이들이 와서 생활하는 곳이라고 했다. 정부지원이 없는 이곳 일을 좋은 마음으로 도맡아 하고 계시는 이곳 유치원 원장님은 수입도 없고 일이 너무 힘들어 그만두려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작년에 우리 대학에서 봉사활동을 온 것을 보고 힘을 내셔서 다시 기운내고 일어서셨다고 했다. 이 얘기를 듣고 나는 ‘봉사’의 의미를 한번 더 돌아보게 되었다.
숙소에 돌아와 소중한 사람들과 정말 오랜만에 연락을 했다. 나를 지지해주고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존재. 힘이 되는 존재.
한국을 떠나 이렇게 멀리 타지에서 생활하게 되면 소중했던 사람들을 다시 상기시키게 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 가족, 친구들... 평소엔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던 소중한 감정은 이렇게 타지에 오면 더욱더 불이 붙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던 것들을 타지에 와서 멀리서 지켜보게 되고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면 그 애틋함은 앞으로 한국을 돌아가서 그들에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된다.

2015. 7. 29 (수)

     
 

지금까지의 봉사날 중에서 가장 뜻 깊고 의미있다고 느껴졌던 하루였다.
오늘은 아이들에게 점심밥을 대접하는 날이어서 유치원 도착하자마자 요리준비를 했다. 요리는 언제나 새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요리를 하는 도중의 친구들과의 협동심, 요리가 완성되었을 때의 신기함과 뿌듯함.
요리가 완성된 후 아이들에게 음식을 떠먹여 줄때, 난 너무나도 행복한 기분을 느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음식 떠먹여 주는 건 해외봉사를 가서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만든 음식을 아이들이 맛있게 먹어줄 때의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곳 유치원에서는 종머드 중학교처럼 아이들과 정신적 교류가 없어서 많이 아쉬웠다.

2015. 7, 30 (목) 

게르와의 첫 만남!
게르로의 이동을 위해 아침 일찍 버스에 올라탔다. 졸린 눈을 비비고 버스에서 내려 테를지 국립공원에 딱 도착했을 때, 난 그 웅장함에 놀랐다. 푸르름의 극치였다. 초원 위에 앉아있는 커다란 바위들. 옹기종기 모여있는 하얀 게르들, 길 끝을 지나면 또 다른 초원이 펼쳐지는 곳. 너무 아름다웠다. 감탄사를 제외하고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본 곳 중 ‘자연’이라고 칭하기에 가장 부끄럽지 않았던 곳이었다.

2015. 7. 31 (금)

   
 

저녁에 이곳에서 함께 머물던 외국인들 앞에서 한국을 널리 알릴 수 있는 태권도와 k-pop, 그리고 사물놀이 공연을 했다.
비와 번개가 함께 어우러진 태권도 공연이었다. 비록 비가 왔지만 난 비를 맞으며 태권무를 하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너무 나도 가슴 떨리는 일이었고,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해볼까 싶었다. 감사하게도 외국인 분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고, 그래서 우린 더 힘이 났다. 한국을 알린다는 것이 뿌듯했고, 우리가 그동안 열심히 준비했던 것을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이 뿌듯했다. 나, 그리고 팀, 우리 해봉5기 35명의 공연. 이를 보고 있으니 나의 대학 군산대학교가 자랑스러워졌다.
이 모든게 꿈만 같았던 하루였다. 이렇게 게르에서의 마지막 밤이 흘러가고 있었다.

2015. 8. 1 (토)
어느새 2주가 흘렀다. 이렇게 지나고 보니까 오기 전에 왜 그렇게도 걱정했었는지, 왜 그렇게도 두려워했었는지 후회가 된다. 지나고 돌이켜보면 걱정을 해도 2주, 걱정을 안 해도 2주. 어차피 시간은 똑같이 흐르는데 말이다. 앞으로 무슨 일을 도전할 때 걱정은 접어두고 자신있게, 당당하게 도전할 것이다. 편안하게, 꾸밈없이, 내 모습 그대로. 힘든 일도 어차피 닥치는 것이고 기쁜 일도 다가오는 것이라면 걱정하지 말고 담담히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해외봉사. 서른 다섯명 모두가 함께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나 혼자였다면 절대 해내지 못할, 아니 상상조차 하지 못할 매순간들이었다.
이렇게 2주가 끝이나서 헤어질 때가 왔다. 헤어짐은 언제나 아쉽다. 하지만 우리의 몽골 통역사 아귀쌤이 이렇게 말하셨다. “헤어짐이 있어야 만남이 있는 것이에요” 2주동안 매일같이 웃는 얼굴만 보여주시던 아귀쌤이었다. 이렇게 정말 헤어질 사람이 말했던 탓일까. 뻔한 말이지만 내 마음에 너무나도 와 닿았다.
내 나이 스물 두 살. 그리고 앞으로 무수히 나에게 다가올 새로운 만남들. 또 어떤 만남이 날 기다리고 있을지, 앞으로 펼쳐질 나의 인생은 어떤 나날들로 채워질지 기대가 된다.

   
 

임정희(경제학·3)  wjdgml8672@hwangr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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