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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드는 팬덤 문화
이혜원 기자 | 승인 2017.05.29 |(509호)

대중문화는 대중사회의 탄생과 더불어 등장했다. 그리고 대중문화는 대중의 존재가 필수 조건으로 대중이 좋아하는 것에 따라 형성된다. 아무리 훌륭한 것이라 평가되더라도 대중이 열광하지 않는다면 쉽게 사라지기도 하고, 반대로 형편없는 것이라고 비난을 받더라도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유지된다. 대중문화 텍스트는 작품성이나 완성도, 의미 등도 논할 필요가 있지만, 실제로 판가름 나는 것은 대중이 얼마나 선호하는가의 문제이다. 대중문화의 최종결정권은 대중에게 있다.

대중의 다른 이름은 '팬'이라고 할 수 있다. 팬들은 대중문화의 특정 텍스트 혹은 특정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그런 행위는 그 대상이나 텍스트를 더욱 부각시킴으로써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더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다. 그 결과 대중문화는 대중의 관심에 따라 새로운 흐름이나 유행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사라진다. 대중문화는 엘리트문화 혹은 소수 특정 계층 문화가 아니라 다수의 문화이기 때문이다.

대중에 의해 지탱되는 대중문화는 '스타'를 낳는다. 스타는 홀로 빛난다기보다는 대중의 관심에 의해 존재한다. 그런 점에서 스타는 고유한 정체성이 아니라 철저하게 상대적 정체성을 갖고 있다. 스타와 팬의 관계는 대중문화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풍경이다. 팬의 유행은 팬덤 현상으로 이어지는데, 2000년대를 전후로 한국사회에서도 팬덤 문화가 중요한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났다.

팬덤 문화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지 15년 이상 흐른 지금, 팬덤 문화는 삼촌팬이나 이모팬 등 연령층도 확장되었고 팬덤 내부에서 자성적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제 더 이상 10대 청소년 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연령과 직업 등 다양한 팬층이 형성되면서 팬덤 문화가 상대적으로 균형을 잡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팬덤 내부의 새로운 방식의 활동 문화가 주목을 끌고 있다. 기부와 봉사 등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를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팬덤의 이름을 내세워 하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는 결과를 낳게 됨으로써 팬덤은 자신들이 공유하는 정서를 사회적으로 환기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팬들에게 스타는 단순히 대중문화에 종사하는 연예인의 정체성을 넘어서는 존재이다. 스타는 때로는 멘토가 되거나 힐링을 제공하는 치유자가 되기도 한다. 팬덤 문화의 변화는 스타와 팬의 관계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반면, 팬덤문화의 미숙한 점도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왜곡된 팬덤 문화의 형태인 ‘사생팬’을 들 수 있다. 물론 과거에 비해 사생팬은 많이 줄어든 편이지만 여전히 스타의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닐 수 없다. 그룹 블락비의 멤버 지코는 최근 잠자는 도중 누군가가 현관문 도어락 비밀번호를 계속해서 누르는 것을 들었다는 이야기를 방송에서 소개했다. 심지어 인터폰 화면으로 현관 밖을 확인했을 때 사생팬들이 자신에게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지코는 "막상 상황이 닥치니 큰 공포가 밀려왔다"고 고통을 호소했다.

팬의 입장에서야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상생활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사랑의 반대말이 무관심이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관심이야말로 애정의 척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최소한 보호받아야 할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까지 팬의 애정이라고 보기에는 큰 무리가 있다. 그러한 행동은 단순히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희열을 느끼는 스토킹에 지나지 않는다. 좋아하는 연예인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고 기만하는 행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연예인들도 사람이다. 공인이라고 해서 대중에게 자신의 사적인 삶을 모두 공개해야한다는 의무는 없다. 다시 말해 우리가 그들의 팬이라는 이유로 그들의 삶을 공개적인 유희성 가십거리로 여기고 침범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대중문화와 문화산업의 갑작스러운 부흥은 스타의 무게감을 필요 이상으로 높인 측면도 없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스타 개인으로서도 불행을 자초하기도 한다. 하지만 팬덤 문화가 많이 성장한 지금 바로 그러한 불균형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팬덤 문화는 더 이상 소수 열성적 팬 중심의 비주류 문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참여 문화적 소비 양식을 의미하게 되었다. 팬덤의 소비가 현대적 커뮤니케이션과 소비의 당연한 측면으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또한 팬덤 문화는 이제 단순히 스타를 추종하는 팬덤을 넘어 그 자체가 자율성, 생명력을 갖는 커뮤니티로 더욱 성장하게 될 것이다.

이혜원 기자  hm8561@hwangryo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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