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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대상(소설)술배기 꽃 - 아빠관찰 보고서
관리자 | 승인 2019.01.07 |(0호)

술배기꽃

- 아빠관찰보고서 -

 

 

 

*

철커덕.

오순도순하던 우리의 대화도 끝이다. 아빠가 현관문을 따는 소리에 화기애애했던 공기가 금세 무거워졌다.

“....다녀오셨습니까”

어렸을 적에 아빠는 나와 누나에게 자기가 집으로 돌아오면 번뜩 일어나서 상체를 숙이며 “다녀오셨습니까?”라고 인사하라고 철저히 교육시켰다. 이 일방적인 관례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정말 잘 다녀왔냐고 인사하는 것은 아니다. 하루 종일 일도 안하고 술만 마시고 온 사람에게 왜 다녀왔냐고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겠지만, 하지 않으면 또 지랄 발광할 게 뻔하니까 가정의 평화를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억지로 인사를 했다. 인사를 한 덕분인지 아빠는 오늘 우리에게 잔소리를 조금만 하고 아빠방으로 들어가서 잤다. 덕분에 엄마랑 나와 누나는 거실에서 편하게 잘 수 있었다.

 

 

*

아빠는 엄마가 누나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년간 도망가 있었다고 한다. 왜 그런지는 누나도 모른단다. 엄마는 가끔씩 누나에게만 이런 얘기를 해주고 나한테는 하나도 안 해준다. 엄마 눈에는 아직도 내가 어린아이로 보이나 보다. 나도 클 만 큼 다 큰 고등학생인데.

 

 

*

저 눈동자가 너무 싫다. 술에 취해 초점 없이 흐리멍덩한 눈빛. 나를 보고 있어도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냥 검은색 바둑알. 딱 그 정도다. 그 바둑알로 날 응시하고 나에게 뭐라고 말을 걸지만, 굳이 나에게 하는 말 같지 않아서 무시하고 계속 TV를 본다. 그러다보면 제 혼자 중얼거리다가 조용히 자기 방에 들어가 잔다. 역시 나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

“아들, 엄마 왔다~”

엄마를 보면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엄마가 없었으면 지금 나도 이 세상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가 있기에 버티고 버텼다.

“엄마, 왜 머리랑 옷이 다 젖었어?”

“철쭉들 물주고 와서 그래.”

마트에서 알바도 하면서 농사까지 짓는 엄마가 참 대단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뽑으라고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우리 엄마를 뽑을 것이다. 고등학생인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열심히 공부하는 것과 안마해드리는 것, 그리고 말동무가 되어드리는 것. 이것들 말고는 해드릴 게 없어서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월급 몽땅 엄마에게 가장 예쁜 옷을 맞춰드릴거다.

 

 

*

낮잠을 자다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서 깼다. 거실에 나가보니 엄마가 누나 때문에 화가 잔뜩 나 보였다.

“너 담배 끊었다면서! 근데 이게 뭐야, 응?”

상황을 보니 누나가 어제 세탁기에 바지를 넣었는데, 그 안에 담배를 뺀다는 것을 깜박했나보다.

“아, 몰라 이 씨.”

“쾅!”

또 누나의 주특기가 나왔다. 엄마가 잔소리할 때면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잠수타기. 예전의 누나는 정말 착한 누나였다. 하지만 그날 이후 누나는 완전히 딴사람이 되어버렸다.

 

 

*

작년 이맘때였나? 아빠와 엄마는 거의 매일 수도 없이 싸우셨지만, 특별히 더 기억나는 날이 있다.

“애미 애비 없는 년 데려다 살아주니까 아주 기어오르네 썅년이.”

고아원에서 자란 엄마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아빠는 또 이 말 말고도 성적인 말로도 엄마에게 상처를 주었다. 너무 더러운 말이라 차마 적지 못하겠다. 바보 같을 정도로 착했던 누나가 이날은 분노에 사로잡혔다. 아빠에게 처음으로 대들었고 아빠는 처음 보는 딸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는지 누나에게도 하지 못할 말을 하며 누나의 뺨을 때렸다. 뺨을 맞아 고개가 돌아간 누나는 이때에 그나마 조금이라도 남아있던 아빠에 대한 마음도 같이 돌아간 것 같다. 이날 이후 누나는 변했다. 나풀거리는 교복치마를 줄여 누가 봐도 짧은 치마로 만들었다. 또 눈썰미 없는 내가 봐도 머리색이 밝아진 걸 눈치 챌 정도로 밝은 색으로 염색을 했다. 화장도 한번 하지 않던 누나가 화장도 하고 다닌다. 가끔씩 말도 없이 집에도 안 들어온다. 완전히 딴사람이 되었다. 무서울 정도로.

 

 

*

한번은 자다가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 화장실을 가다가 이제 막 집에 들어온 누나랑 마주친 적이 있다. 오랜만에 누나와 단 둘만의 시간이었다. 비틀거리며 바로 자기 방을 들어간 누나에게 내가 정말 싫어하는 술 냄새가 났지만, 이때가 아니면 누나의 속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다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다짜고짜 누나방으로 걸음을 향했다.

“누나, 또 술 마신거야?”

“...야 김재민, 넌 내가 아빠 때문에 이렇게 된 것 같지? 틀렸어. 다 엄마 때문이야. 자기한테 애미 애비 없다고 말하고 창녀라고까지 말하는 아빠한테 아무 말 안 하는 게 정상으로 보이냐? 난 절대 저렇게 안 살거야. 저렇게 병신같이.”

 

 

*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새벽 네시 반쯤이었나? 한번은 시험기간이라 밤을 새우며 공부하고 있는데, 엄마의 새빨간 폴더폰에서 알람 소리가 들렸다. 엄마가 이렇게나 일찍 일어나시는지 몰랐다. 엄마는 일어나자마자 주방에 가서 요리를 하고 계셨다.

“엄마, 이 시간에 무슨 요리를 해?”

“재민이 자는 거 아니었어? 이따 밭 매는 할머니들 새참거리 만들고 있어.”

“뭐야, 근데 왜 꼭두새벽부터 준비해?”

“엄만 마트 출근해야 하잖아. 출근하기 전에 만들어놓고 가야지.”

마트에서 일하랴, 돈 받고 우리 밭 매주는 할머니들 새참거리 챙기랴 엄마는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하다. 새벽에 일어나 새참거리를 준비하고 6시 반에 마트에 출근하여 밤 9시 반이 돼서야 집에 돌아오신다. 새벽에 나가서 밤에 들어오시면, 피곤하셔서 씻고 뉴스를 틀고 바로 주무시는 게 엄마의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다. 농사짓기 바쁜 여름철엔 마트 사장님께 양해를 구하고 일하는 중간에 농사를 짓는다. 집에 빚은 많고, 남편은 일도 하지 않으니 누나와 나를 먹여 살리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음을 말 안 해도 직감적으로 알았다.

영웅은 다른 곳에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엄마가 영웅이다. 힘들게 돈 버시는 엄마를 생각하면 열심히 공부할 수밖에 없다. 누나까지 엄마 속을 썩이니 더 그럴 수밖에 없다. 나도 아빠에게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 엄마가 이해가 안 가지만, 나까지 엇나가버리면 엄마가 너무 슬퍼하실까봐 그렇겐 못하겠다.

 

 

*

아빠 방의 문을 열면 홀애비 냄새가 진동한다. 머리가 아플 정도다. 술병은 왜 저리 많은지 바닥 전체에 널브러져 있다. 그 옆의 담배꽁초로 만든 선인장은 덤이다. 술냄새와 담배냄새가 누가 더 독한지 대결하는 곳이다. 사람 사는 곳이 아니다 이곳은.

 

 

*

아빠가 걷는 것을 보고 있자면 꼭 시체가 걷는 것 같다. 뼈만 남았을 정도로 말랐고 피부도 새까매서 더 그렇게 보인다. 반면 엄마와 누나와 나는 통통하다. ‘누가 보면 우리 가족이 아빠를 쫄쫄 굶기는 것 같이 보진 않을까?’하는 억울한 생각이 가끔씩 든다. 엄마는 아빠가 해달라는 음식을 다 해준다. 하지만 아빠는 맛이 없다느니, 생선 상태가 왜 이러냐느니 등등 내가 먹었을 땐 맛있기만 한데 아빠는 이상한 핑계를 대며 깔짝거리고 조금만 먹고 안 드신다. 일부러 엄마를 괴롭히려고 저러는 게 분명하다. 집 앞 마트에서 일하느라 바쁜 엄마가 일하는 중간에 집에 와서 겨우 해주는 건데도 저러신다. 엄마도 저런 아빠에게 요리를 해주기 싫겠지만, 또 밥을 굶기면 마트까지 쫓아와서 배고파죽겠다고, 신랑 굶기는 년이 어딨냐며 소란피울 게 뻔하니 요리를 해주는 것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애초에 아빠는 일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놀면서 왜 하루종일 일하는 엄마에게 요리를 해달라고 저러는지 원... 자기가 해서 먹으면 되지. 예전에 이렇게 일을 안 하는 아빠가 직접 요리해서 먹으라고 해봤지만, 전혀 안 통한다. 어딜 남자가 주방에서 요리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하신다. 절대 저런 남편은 안 돼야지.

 

 

*

“니가 또 종학이 각시헌테 내 욕하고 댕겼지?”

또 술 마시다가 동네 사람들한테 엄마와 비교를 당했나 보다. 동네 사람들이 봐도 아빠는 하루 종일 술 퍼마시며 놀고 엄마는 뼈 빠지게 일만 하니까 가끔씩 아빠에게 술 좀 그만 마시고 각시 생각해서 일 좀 하라고 다그치는 말을 하는 것 같다. 제발 안 그러셨으면 좋겠다. 그런 말을 듣고 오는 날이면 엄마에게 또 왜 동네 사람들에게 자기 욕을 했냐며 노발대발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절대 남 앞에서 아빠 욕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아빠는 동네 사람들에게 엄마 욕을 하고 댕긴다. ‘냉장고 청소를 안 한 지 10년이 넘었다’, ‘집이 청소를 안 해서 완전 돼지우리다’, ‘대가리가 너무 커서 같이 다니기 창피하다’ 등 내 앞에서도 동네 친구들에게 엄마 험담을 자주 했다. 처음엔 화가 났지만, 자기가 생각해도 자기가 엄마에 비해 볼품없는 사람이라서 엄마를 깎아내려서라도 자기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인 것 같아서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

수학여행을 갔다가 오랜만에 집에 들어왔는데 웬일인지 아빠의 눈이 초롱초롱하다. 저러면 분명히 술병이 나서 요 며칠 새 술을 못 마셔서 그런 거다. 아빠가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은 십중팔구 술병 나서 술이 먹고 싶어도 못 마셔서 그렇다. 또 며칠 있다 괜찮아지면 술을 마실 거다. 안 마시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

생각해보니 아빠와 좋은 추억도 있었다. 컴퓨터 자격증을 취득하러 시내로 가야 했을 때 아빠가 차로 태워다주고 내가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셨다가 햄버거를 사주셨다. 또 무슨 아빠와 좋은 기억이 있었나 생각해보려 해도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는다. 아, 또 하나 생각났다. 술에 잔뜩 취해 치킨을 사 오시고 자긴 바로 방에 가서 주무신 날!

 

 

*

하루는 술병이 심하게 났는지 병원에 좀 가봐야겠다고 하고 나갔다. 며칠 뒤 검사결과가 우편으로 와서 자세히 보니 죄다 정상이다. 하나님도 참 무심하시지. 저희 아빠는 하루종일 술 마시고 담배도 하루에 한 갑 이상 피우시는데 폐암이나 위암은 기본 아닌가요? 네? 정말 당신은 불공평하세요.

 

 

*

우리 집은 빚이 2억 가량 있었다. 대부분 아빠가 노름을 해서 얻은 빚이다. 엄마가 뼈 빠지게 일하신 덕분에 1억으로 줄었다고 누나한테 들었었다. 엄마는 항상 누나와 나에게 나중에 절대 빚을 지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신다. 빚만 없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면서.

얼른 돈을 벌어서 엄마를 쉬게 해드리고 싶다. 쉬는 날도 없이 일하시는 엄마를 빚의 늪에서 구원해드리고 싶다.

 

 

*

새벽에 거실에서 자고 있는 우리에게 아빠가 갑자기 아빠방에서 나와 우리의 잠을 깨웠다. 자려고 하는데 귀신이 자꾸 느껴져서 못 자겠다나 뭐라나. 안 그래도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짜증나게 왜 깨우고 난리인지 뻑하면 새벽에 잠자는 가족을 깨운다. 특히나 엄마는 일찍 일어나서 새참거리를 준비해야 하는데 새벽에 깨우는 아빠가 정말 싫다. 일도 안 하면 엄마 잠이나 많이 자게 방해나 하지 말던가. 얄미워 죽겠다.

 

 

*

누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였는가? 난 명절이 싫다. 할머니만 오시면 싸움이 나기 때문이다. 명절을 맞아 고모가 추석에도 혼자 계실 할머니를 생각해 우리 집으로 할머니를 모셔왔더니 또 난리가 났다.

“누구 맘대로 데려오래! 얼굴만 봐도 짜증나는 고만.”

“에휴, 또 저러네 또. 됐다, 내가 가마.”

할머니는 소고기무우국을 드시다가 아들이 더 화를 낼까 봐 황급히 짐을 싸셨다.

“느그 아비가 술에 미차서 그라지, 술만 안 마시면 참 괜찮은 놈이여.”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짐을 싸시면서도 나한테 끝까지 아빠를 감싸신다. 도대체 할머니가 무슨 잘못을 하셨다고 할머니만 보면 저럴까? 나도 나중에 크면 아빠가 할머니에게 한 것처럼 아빠에게 똑같이 되돌려 드릴 거다.

 

 

*

누나랑 거실에서 추석 특선영화로 ‘태극기 휘날리며’를 보고 있는데 마침 지나가던 아빠가 갑자기 채널을 바꾸라고 요란을 치신다. 항상 TV에서 총소리만 나면 저러신다. 참 대단한 평화주의자가 납셨다.

 

 

*

“술배기.”

동네 사람들이 술을 좋아하는 우리 아빠를 부르는 이름이다. 덕분에 난 술배기 아들이 되었다. 정말 창피하다. 친구들의 다른 아빠들이랑 비교를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다. 다른 아빠들처럼 평범한 직장. 아니, 아무 직업이던 상관없으니 성실하게만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 아니, 일을 안 하실 거면 차라리 엄마를 방해 안하셨으면 좋겠다. 엄마가 일하는 마트에 가서 난동을 피운다던가, 새벽에 엄마 잠 못 자게 깨운다던가, 도박을 한다던가 등등.

 

 

*

태어나서 엄마가 저렇게 화내는 건 처음 본다.

“이 미친놈아, 네가 인간이냐?”

“아, 미안하다고 했잖아!”

“일도 안 하는 놈이 노름해서 삼천만 원을 잃어? 네가 제정신이야? 저번에 다신 노름 안 하겠다고 약속했잖아!”

뭐? 삼천만 원? 어제 서점 앞에서 만삼천 원짜리 문제집 한 권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30분 동안 고민한 나에게 삼천만 원이란 숫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엄마가 자기 몫까지 대신 일해주면 고마워하지도 못할망정 도박으로 삼천만 원을 잃었다고? 피가 솟는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확실히 알았다. 분노가 사람을 사로잡으면 눈깔이 뒤집힌다는 말도 알 것 같다. 화가 솟구쳐서 이성을 잃었다.

“미쳤어? 아빠가 그러고도 가장이야? 일도 안하는 주제 도박을 해서 돈을 잃고 와?”

“뭐 이 새끼야? 어딜 감히 아빠한테...”

“당신이 아빠야? 당신 같은 게 무슨 아빠야, 아빠라고 불릴 자격이나 있어?”

정말 아빠라고 부르기 싫었다. 제발 이런 사람이 내 아빠가 아니었으면 했다.

“이 새끼가 돌았나. 애새끼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갑자기 화풀이를 엄마에게 하더니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미친 듯이 엄마를 때렸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나도 놀라 달려가서 아빠를 쌔게 바닥에 밀쳐버렸다. 어느새 자기보다 힘이 세진 아들의 힘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너 이 새끼들, 가만 안 둬.”

하더니 씩씩거리며 집을 나갔다.

다리가 심하게 떨리고 심장이 미친 듯이 쿵쾅거렸다. 가슴은 왜 이리 아픈지 누가 내 가슴에 100톤짜리 추를 매달아 놓은 것 같이 무겁고 꽉 막힌 느낌이 들었다.

“제발 좀 아빠랑 이혼하면 안 돼?”

헝클어진 머리로 곳곳에 남겨진 싸움의 흔적을 치우는 엄마에게 소리쳤다. 고아로 자라서 부모 없는 슬픔을 누구보다 잘 아는 엄마가 우릴 위해 절대 이혼을 하지 않을 걸 알면서도 물어봤다. 차라리 저런 아빠는 없는 게 나은데 왜 이혼을 안 하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오늘은 참 슬픈 날이다. 아빠가 언제 다시 돌아와서 우릴 때릴지 몰라서, 패륜아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엄마가 너무 불쌍해서, 아빠가 소름끼치게 싫어서, 이런 가정환경이 미워서.

 

 

*

그날 이후 그 사람은 며칠째 집에 안 들어왔다. 엄마가 아빠 친구들에게 수소문해보니 시내 모텔방에서 혼자 묵고 있단다.

“엄마, 아빠는 언제 돌아올까? 평생 안 왔으면 좋겠는데”

“돈 떨어지면 알아서 오겠지 뭐.”

 

 

*

어머니는 요새 부쩍 주무시기 전에 공책에 무언가를 적으신다. 자세히 보니 성경책을 필사한 것이었다.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너의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거절하지 말라.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무슨 이런 병신 같은 말이 다 있어?

 

 

*

“재민아, 가방 싸서 교무실로 잠깐 와보거라.”

무슨 일이시지? 야자를 하는 중에 갑자기 담임 선생님께서 날 부르셨다.

“재민아, 아버지가 크게 다치셨나보다. 얼른 핸드폰 챙겨서 엄마한테 연락해서 병원으로 가봐라.”

아빠가 위독하시다고? 그토록 바라던 시나리오였는데 생각보단 담담했다. 엄마에게 전화해 병원에 도착해보니 아빠는 병실에 누워있고 엄마와 할머니가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아이고 내 새끼, 이제 어떡한디야 아이고”

할머니의 가슴을 치는 소리만이 병실을 가득 채웠다.

“어떻게 된 거야?”

“응, 그게... 모텔방에서 술 취한 채로 화장실에서 미끄러져서 세면대에 머리를 세게 부딪쳤나봐. 피를 너무 많이 흘렸대. 누가 일찍 발견했으면 괜찮았을 텐데...”

엄마는 조금씩 울먹거리며 최대한 담담하게 말씀하시려 애쓰셨다. 예전부터 ‘아빠가 죽으면 엄마는 과연 우실까?’란 생각을 자주 했었는데 역시 미운 정이 무섭나 보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토록 바라던 상황인데 의외로 덤덤했다. 일단 신에게 감사하긴 하다.

 

 

*

상복을 입어보니 기분이 좋진 않다. 드디어 꿈에만 그리던 날이 왔는데 기분이 왜 이런지.

그래도 영정사진 속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었다.

하나둘씩 오시는 동네 분들을 밤을 새우며 맞이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왜 이런 짓을 3일 동안이나 해야 하는지.

“너가 창수 아들이구나.”

이 세상의 상주 중 가장 뚱한 표정으로 조문객을 맞이하는 나에게 우리 아빠 또래로 보이는 한 아저씨가 혼자 새벽에 오셔서 말을 거셨다.

아저씨는 혼자 육개장을 드시기 껄끄러우셨는지 나에게 앞에 앉아보라고 하셨다.

“아빠가 술 많이 마셔서 힘들었지? 그래도 너네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마라. 너네 아빠도 알고 보면 참 불쌍한 사람이야.”

도대체 뭐가 불쌍하다는 건지. 이 아저씨가 하는 말은 그냥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야겠다.

“너네 아빠가 5·18 때 끌려갔던 건 말 안 했지? 아마 안 했을 거야. 가장 잊고 싶었던 기억이었을 테니까.”

“5·18이요?”

“그래. 5·18 민주항쟁. 너네 아빠가 특전사 출신인 건 알고 있지?”

“네, 그건 알고 있는데...”

“너희 아버지랑 나랑 같이 광주에서 데모 일어났다고 막으라고 동원됐었다. 그때 생각만 하면 참... 너희 아버지가 원래는 꿈 많고 성실한 사람이었는데 이때 이후로 완전히 틀어졌지. 아무튼 너희 아버지도 이렇게 되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니까 너무 미워하진 마라. 너희 아버지나 나나 독재의 피해자니까.”

 

 

*

“엄마, 이제 그만 좀 우세요!”

고요했던 장례식장에 술에 잔뜩 취한 작은삼촌의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엄마는 형한테 미안한 마음은 갖고 계세요? 저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마가 창수 형이랑 저는 아빠가 데려온 놈들이라고 큰형하고 대놓고 차별하신 거 아직도 상처로 남아있어요. 어렸을 때부터 큰형한테만 맛있는 반찬 주고, 큰형만 고등학교 보내주고, 아빠 돌아가셨을 때도 유산 큰형한테만 주고 그러셨잖아요. 근데 왜 지금 큰형 사고로 죽었을 때보다 더 울고 계세요? 저는 당최 이해가 가질 않네요.”

 

 

*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아빠방 문을 열었다. 그렇게 맡기 싫었던 아빠방 냄새인데 오늘은 이 냄새가 기분 나쁘지 않다. 바닥에 널브러진 술병을 치웠다. 옷장을 열었는데 옷도 별로 없다. 옷장 서랍을 열어봐도 별 물건이 없었다. 구석에 있던 얼룩무늬 앨범 하나를 빼곤.

먼지를 털고 펼쳐보니 아빠의 특전사 시절 사진이 들어있는 앨범이었다. 아빠의 저런 눈빛은 처음 보았다. 자신감 넘치고 패기 가득한 눈빛으로 바닷가에서 웃통 벗고 동료들과 찍은 사진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계속해서 넘기면서 앨범을 보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빠의 눈빛이 변해있었다.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바둑알 눈빛. 적힌 날짜들을 보니 1980년 이후로 눈빛들이 다 흐리멍덩하다. 앨범의 마지막엔 낡아서 누래진 종이 몇 장이 껴있었다. 열어보니 처음 보는 아버지의 군대 시절 일기였다.

 

 

*

1980년 5월 21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 내가 왜 이곳에 와서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때려야 하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길거리에 가면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하지만 이젠 별로 아무렇지도 않게 된 내가 무섭다. 나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 같다.

“야 거기 김창수! 머리 보이잖아 인마! 똑바로 숨으란 말이야.”

이병관 소령님은 뜬금없이 우리 부대원들을 데리고 광주 외곽마을로 가셔 폭도를 찾아내야 한다며 길가에 잠복하도록 시키셨다. 잠시 후 멀리서 버스 한 대가 우리 쪽을 향해 왔고, 이병관 소령님이 한 명을 시켜, 앞에 나가서 버스를 멈추고 심문할 수 있게 수신호를 하게 시켰다. 하지만 버스기사는 갑자기 무장한 군인이 튀어나와 당황했는지 도리어 속도를 내 우릴 지나쳐버렸다.

“뭣들 하고 있어! 사격 개시해!”

“탕 타탕 탕탕. 타다다당.”

갑자기 벌어진 총성에 귀가 멀었고 가슴은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기저기서 갑자기 울리는 총소리에 놀라 나도 그만 한 발을 쏴버렸다.

설마 내 총에 죽은 사람은 없겠지? 아닐 거야.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내가 선량한 사람을 죽였을 리 없어..

 

“사격 중지! 야 김창수, 최낙연! 가서 다 죽었는지 안에 들어가서 확인해봐!”

버스는 빨간 피로 물들었다. 머리에 수도 없이 총알이 박힌 사람, 엉덩이 쪽이 터져버린 사람, 배에서 빠져나온 장기를 손으로 붙잡고 있는 사람 등 도저히 보고 있기 힘들다. 이들 중 혹시 내가 쏜 총에 맞아서 이렇게 된 사람은 없겠지? 없을 거야.

“생존자 발견! 한 명이 아직 숨이 붙어있습니다!”

“야 김창수, 알아서 사살하고 나와.”

총에 맞아 잘린 손을 보여주며 살려주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저 사람을 내가 쏠 수 있을까? 저 아무 잘못 없는 사람에게.

“야 이 새끼야, 빨리 쏘고 나오라고! 셋 셀 동안 안하면 넌 나한테 죽는다. 하나.....둘........ㅅ”

“탕!”

나는 오늘부로 살인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인 살인마....

 

 

*

1980년 5월 24일

야산으로 끌려온 여인들의 밤마다 울려 퍼지는 신음소리가 아직도 귀에 맴돈다. 피로 물든 여고생의 치마가 생생하다. 그 처절한 비명이 계속 머릿속에 맴돌아 잠이 들 수 없다.

 

 

*

1980년 8월

술이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이 현실에서 벗어나려면 술 밖에 답이 없다. 그 살려달라는 간절함이 묻어난 눈빛과 강간당하며 괴로워하는 여자들의 비명소리를 잊으려면 술을 마셔야 한다. 술을 미친 듯이 먹어서 잠이 들어야 한다. 이 방법밖엔 없다.

 

 

*

내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먹혀가고 있는 것 같다.

 

*

아빠는 나에게 가해자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을 괴롭혀온 가해자. 나는 그런 아빠 때문에 고통 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던 피해자다. 하지만 우리 아빠도 피해자였다. 상관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복종할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차별로 인해 증오심으로 가득한 피해자. ‘애초에 이 세상에서 명확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나눌 순 있을까?’ ‘확실한 원인과 결과가 존재하긴 할까?’ 나에겐 아빠가 가해자다. 아빠에겐 ‘이병관 소령’과 ‘할머니’가 가해자다. 또 위로 거슬러 올라가면 분명 이병관 소령을 그렇게 만든 가해자가 또 있을 것이고, 할머니가 차별을 할 수 밖에 없는 사회를 만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우린 모두 다 피해자다. 가해자는 찾을 수 없는 피해자들만의 세상 속에서 산다, 피해자가 피해자에게 가해자가 되고, 피해자끼리 싸움을 한다. 서로 자기만 피해자라고 억울하다고 우기는 세상 속에 산다.

 

 

*

‘나는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이 질문 앞에서 난 아버지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피해자인척하는 가해자였다. 반에서 왕따를 당하는 친구를 모르는 채하며 동조했던 가해자. 아빠의 상처는 보지 않고 내 상처만 봤던 가해자.

나는 피해자다.

나는 가해자다.

아빠는 가해자다.

아빠는 피해자다.

 

 

*

오늘도 어머니는 성경책을 노트에 적으시다가 주무셨다.

 

비판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

용서. 참 힘든 단어다. 이제까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을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나의 넓은 아량으로 그 잘못을 덮어주는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용서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내가 그 사람을 용서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 자신을 용서한 것이었다. 그 사람을 미워한 나 자신을 용서하는 게 진정한 용서였다. 그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한 잘못에 대해 죄의식을 갖고 있는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용서하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과만 관련이 있다.

 

나는 아빠를 용서하였다. 아니, 아빠를 미워한 나 자신을 용서하였다.

 

 

*

아빠의 유품을 정리하는 김에 내 방 청소를 하다가 구석에 묵혀두었던 국어교과서를 펼쳐보았다. 그중 한 시가 내 눈에 꽂혔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나태주, 「풀꽃」

 

예전에 이 시를 배웠을 땐, ‘참 예쁜 사랑고백 시’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읽어보니 사랑 고백하는 시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은 대충 보면 예쁜지 알 수 없다는 말 아닌가.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은 그 사람을 관심 있게 바라보지 않으면 사랑스러운지 알 수 없다는 말 아닌가.

결국 누군가를 자세히 보거나 오래 보지 않으면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

 

 

*

나도 시 한편 쓰고 마치련다.

 

 

자세히 보아야

이해할 수 있다.

 

오래 보아야

수긍할 수 있다.

 

울 아빠도 그렇다.

 

군산대학교 경제학과 4학년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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