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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회 황룡학술문학상 학술부문 가작(독서리뷰)동일한 일상의 낯섦과 공포 - 편혜영의‘저녁의 구애’를 중심으로
관리자 | 승인 2019.01.07 |(0호)

동일한 일상의 낯섦과 공포

- 편혜영의 『저녁의 구애』를 중심으로

 

 

<목 차>

1. 『저녁의 구애』가 놓인 자리

 

 

 

2. ‘주도적 상징물’의 주인공화와 인물의 도구화

 

 

 

3. 섬뜩함의 세 유형

 

 

 

4. 기괴함과 섬뜩함의 차이 혹은 󰡔저녁의 구애󰡕의 잠재성

 

 

 

5. 타자로서의 삶과 살아있는 주체

 

 

1. 『저녁의 구애』가 놓인 자리

 

 

최근 현대 소설 작가 중 유독 눈길이 가는 여성 작가를 꼽으라면 편혜영을 빼놓을 수 없다. 편혜영의 작품들은 현대문명과 피폐해진 현대인의 삶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 최근 현대인의 모습을 여과 없이 투영하여 ‘일상적 기괴함’이라는 자신만의 독특하고도 온전한 세계관을 구축해냈다. 그의 작품을 읽다보면 왠지 모를 꺼림칙함과 불편함, 불안함이 차례대로 밀려오는 걸 느낄 수 있다. 단편소설 「밤의 공사」에서는 ‘늪지’, ‘들쥐’ 같은 단어를 제시하여 음산한 분위기를 그려내고, 『사육장 쪽으로』에서는 ‘사육장’, ‘개 짖는 소리’ 등을 통해 음산한 분위기에 불안을 실었다. 『아오이 가든』에서는 ‘저수지’, ‘맨홀’, ‘동물의 배설물과 사체’를 중심으로 ‘악취로 덮인 세상’ 배경으로 삼아 더 깊이 있는 공포와 기괴함을 형성했다. 이처럼 편혜영의 소설은 여러 작품을 거치며 단계적인 기괴함을 형성하고 현대판 그로테스크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 중 『저녁의 구애』에 실린 단편 소설들은 『사육장 쪽으로』, 『아오이 가든』 등의 이전 작품과 약간 다른 경향을 띠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이전 소설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특유의 기괴한, 날 것 그대로의 자극적 표현이 현저하게 줄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배경과 인물 설정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그동안 편혜영 소설에서 불쾌함을 일으킬만한 기괴한 표현은 소설의 핵심적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그러한 자극적 표현이 줄면 자칫 심심함과 지루함을 유발할 수 있고, 이는 작가 특유의 개성을 잃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편혜영은 오히려 눈에 띄는 기괴한 표현을 줄이는 것을 통해 현대인의 평범한 일상을 낯선 것처럼 표현하여 특별함이 사라진 동일한 삶의 패턴을 역으로 낯설게 느껴지도록 만들었다. 또한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인물들의 기계적인 삶을 ‘동일한 낯섦’으로 변모시켜 왠지 모를 의아함과 의구심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지나치게 사실적이기도 하다.

인물들의 직업과 배경에도 뚜렷함이 덜하다. 파견근무 중인 회사원(토끼의 묘/크림색 소파의 방), 화환 배달을 주로 하는 꽃집 사장(저녁의 구애), 대학교 복사실 주인(동일한 점심), 상사의 심부름을 하는 회사 직원들(관광버스를 타실래요?), 지사 근무를 발령받은 회사원(산책), 내부 감사를 피하기 위해 출장을 간 회계 부서 직원(정글짐), 통조림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통조림 공장).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직장에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매일 똑같은 일과를 반복하는 것만이 이들이 해야 하는 일인 것 마냥 작품 속 인물들의 삶에는 새로움이 없다. 작가는 반복과 단조로움, 동일함 속에 갇힌 현대인의 삶을 풀어내었다.

『저녁의 구애』, 『사육장 쪽으로』, 『아오이 가든』을 일직선상에 두고 편혜영 소설의 단계적 위치를 표시해 보면 『저녁의 구애』는 가장 오른쪽에 위치할 것이다. 인물의 특징과 작품 속 배경은 지나치게 평범해졌다고 말할 수 있으나 낯선 것이 아닌 낯익은 것 즉 동일한 것에서 경험하는 불안, 공포, 두려움은 한층 더 심화된 수준에 이르렀고, 이처럼 일상의 것을 낯설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또 다른 종류의 섬뜩함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변화는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편혜영 소설의 단계적 위치와 변화를 토대로 본 연구에서는 소설 속 인물과 주도적 상징물의 관계성, 소설에 드러난 섬뜩함의 유형, 소설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기괴함과 섬뜩함의 차이를 다룬다.

 

 

2. ‘주도적 상징물’의 주인공화와 인물의 도구화

 

 

편혜영의 소설엔 작품 속 인물과 유사한 주도적 상징물(객관적 상징물)이 곳곳에 존재한다. 여기서 주도적 상징물은 마치 인물이 처한 상황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가시적 역할을 한다. 오히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인물의 말투나 행동보다도 인물의 심리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어 작품의 문제의식과 주제를 한층 더 상징적으로 표출하기도 한다. 작가는 이처럼 인물을 대변하는 내포적 의미를 지닌 주도적 상징물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여 독자로 하여금 인물이 처한 현실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을 시도하게 한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전날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거의 같다고 할 수 있는 밥을 먹으며 그는 자신이 날마다 정시에 복사실 문을 여는 것이 어쩌면 구내식당의 점심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커다란 찜통에 찐 찰기 없이 푸석한 밥, 미지근하게 식은, 싱겁거나 짜서 입에 맞지 않는 국, 비계 많은 제육볶음이나 노랗게 구워진 차가운 생선구이 같은 것을 규칙적으로 먹기 위해서라고. 그렇게 늘 똑같은 한 끼 밥을 먹는 것으로 그는 어제의 낮과 오늘의 낮이 같음을 실감하고 오늘 밤과 내일 밤이 다르지 않을 것을 확신했다. (동일한 점심)

 

작가는 반복적인 삶을 사는 한 남자의 삶을 ‘구내식당 정식 A 세트’로 비유하고 있다.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을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라고 생각하는 한 남자의 지나칠 정도로 단순한 일상을 늘 비슷한 반찬으로 꾸며지는 구내식당 점심메뉴와 일직선상에 위치시킨 것이다. 이처럼 작품 속 주도적 상징물은 인물의 도구화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며 작품 속 문제의식과 작가의 의도를 부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참고인 자격으로 함께 가주셔야겠습니다.” 이번에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됩니다. 오전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요. 늦으면 안 되는 겁니다.” 경찰이 사정하는 투로 동행해달라고 말했다. 그는 약속을 깰 수 없으며 뭔가 질문이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지금 당장 하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번에는 협박하는 어투로 말했다. “투신 사건의 경우 가까이 계셨으니 불가피한 의심을 살 수도 있습니다만.” 그는 다시 한 번 오전의 일은 무척 중요한 거라고 되풀이 했다. 중요한 약속이라는 게 있을 리 없었다. 유일하게 중요한 일과라면 정오에 구내식당에서 정식을 먹는 것뿐이었다. (동일한 점심)

 

이 남자에겐 중요한 일이라곤 여느 날과 같이 학교 복사실에 출근해 제본을 뜨고 거스름돈을 건네주며 정오가 되면 구내식당에서 식권을 사서 별반 다르지 않은 점심을 먹는 것이다. 남자에겐 반복적인 일상이 어떤 이의 죽음보다 우선이었다. 그는 자신의 익숙한 일상에 참고인 조사와 수사 협조라는 낯선 무언가가 개입되는 것을 거부했다. 자신의 일상을 벗어나는 것, 즉 낯선 것으로부터 오는 공포와 동일함이 주는 편안함은 그를 깊이 잠식시켰다. 반복적인 일상에 지루함을 느끼면서도 그 반복적 일상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동일한 점심」과 유사한 점을 느낄 수 있는 편혜영의 단편 소설로는 「통조림 공장」이 있다. 「통조림 공장」의 작중 인물들은 공장에서 끊임없이 생산되는 통조림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꽁치와 고등어, 감귤, 복숭아를 통조림 용기에 넣고 밀봉하는 것.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었다. 공장은 끊임없이 가동되고 기계는 똑같은 몸짓을, 그들 역시 밀봉될 통조림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행위를 반복한다.

어느 날 이들에겐 자신들의 반복되는 일상을 파괴하는 공장장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공장장의 실종 소문은 빠르게 퍼졌고 박과 공장 직원들 사이에서도 공장장의 실종에 관한 이야기가 한동안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을 뿐 박과 공장 직원들은 언제나 그랬듯 통조림에 꽁치와 고등어, 바나나와 감귤을 넣는다. 공장장의 아내 역시 공장장의 실종에 대해 “죽었더라도 마찬가지죠. 내가 간다고 살아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만약 시체가 발견된다면 그때 가겠어요.”하며 남편의 실종이라는 심각한 사건에 무미건조하게 반응한다. 참으로 비정상적인 상황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통조림을 만드는 건 뭐가 힘듭니까? / 가끔 깡통이나 뚜껑에 손을 벱니다. 그때 기분이 상해요. / 그것뿐이라면 일을 재밌어하는 쪽이군요. / 비린내와 소금기를 참기 힘들죠. 기름내도 심하고요. 지금이야 밀봉을 하고 있지만 잠깐 내장을 골라내는 일을 맡았는데, 그때는 물컹거리는 건 여자 살이라도 만지기 싫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지요. 저는 하루 종일 밀봉만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루 종일 꽁치 대가리를 치고 어떤 사람은 내내 생선 뱃속에 손가락을 넣어 미끈거리는 내장을 빼내요. 하루 종일 생선에 소금을 쳐 간을 하고, 하루 종일 깡통을 박스에 포장하기도 해요. / 특별한 건 없군요. 그러면 재미있는 건 뭡니까? /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거예요. 여기 있으면 하루 종일 벨트 위로 속을 벌린 깡통이 돌아가는 걸 봐야 해요. 어지럽죠. 빙빙 돌아요. 귀에서는 날벌레가 윙윙거리며 날아요. 자꾸 귀를 후벼파게 되지요. 귀에 피딱지가 마를 날이 없어요. 어지럽고 윙윙거리고 귀가 간지러운데 매번 골똘히 궁리하는 일이라면 못 했을 거예요 벨트 앞에 서서 그저 익숙한 각도대로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돼요. 몸이 기계의 일부가 되어가는 거죠. 왠지 뿌듯해요. 자랑스럽지는 않지만. (통조림 공장)

위의 대화는 공장장 실종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와 박의 대화이다. 박의 대답에 주목해보면 묘한 이상함을 감지할 수 있다. 하루 종일 밀봉만 하는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에 힘듦을 토로하면서 재미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똑같은 일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라고 한다.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매일 같은 지하철을 타고 복사실에 출근해 정오가 되면 구내식당에서 정식 A 세트를 먹는 남자의 일상과 매일 같은 시간에 통조림 생산 공장에 출근해 텅 빈 통조림 캔에 꽁치와 고등어를 밀봉하는 남자의 일상. 이 두 남자의 일상은 다를 것이 없다. 지루하기 짝이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동일한 삶을 산다. 눈앞에서 지하철 사고를 목격하고도 조사를 거부한 채 정식 A 세트를 먹는 남자와 공장장의 실종에도 여느 날과 다를 것 없이 통조림을 밀봉하는 남자의 모습은 현대 문명과 반복된 일상에 잠식당한 현대인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작가는 소설 속 인물과 유사한 주도적 상징물을 곳곳에 배치하고 둘 사이의 관계성을 밝혀내며 현대인들의 삶의 모습을 형상화한다. 더불어 기계적인 일상에 안주해 변화를 회피하고, 반복에 중독되어버린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모습에 문제를 제기하며 일말의 충고를 건네고 있다.

 

 

3. 섬뜩함의 세 유형

 

 

편혜영의 소설은 ‘섬뜩함’으로 정의할 수 있다. 편혜영의 작품들 속에 내재되어있는 주도적 상징물과 배경은 음산함과 불안의 정서를, 동시에 섬뜩함을 불러일으킨다. 작품 전체에 자욱하게 깔린 음산함은 왠지 모를 으스스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독자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는다. 편혜영은 이를 이질적 공간에 대한 공포, 동일함을 자각하는데서 오는 낯섦에 대한 공포, 반복적 일상 이탈에 대한 막연한 공포로 유형화하여 작품 속에 다양하게 배치시켰다.

이질적 공간에 대한 공포는 인간의 본성이다. 처음 경험하는 낯선 공간은 이질적인 느낌과 함께 끝없는 불안을 야기한다. 편혜영은 소설 속에 인물이 공포를 느낄만한 공간을 설정해 그 낯선 공간을 경험하게 한다. 「밤의 공사」에서는 ‘습지’가 이질적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 습지가 삼킨 것이 동물의 사체인지 사람의 사체인지 이름 모를 억센 잡초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습지와 가까워질수록 불쾌한 역겨운 냄새가 짙어질 뿐이다. 작가는 ‘습지’를 이질적 느낌을 유발하는 공간으로 설정하여 독자에게 섬뜩함을 선사한다. 「산책」에서도 이질적 공간을 찾아볼 수 있다.

 

갈수록 숲이 깊어졌다. 한동안 조밀한 소나무 숲을 따라 밑으로 내려갔는데, 어느 지점에 이르자 숲의 모양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나뭇가지들이 팔과 눈을 할퀼 듯 덤벼들었고 키 작은 나무들과 밀집한 관목이 한데 엉킨 수풀이 나타났다. 어쩐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시감인지도 몰랐다. 숲이 길어질수록 길은 모두 비슷해보였다. 어디에나 잎이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가 있었고 빼곡한 잡목 덤불이 있었다. 불길한 소리로 새가 울었고 바지를 입었는데도 무릎이 쓸릴 정도로 풀이 거칠고 길었다. 길은 희미하게 연결되다가 문득 끊어졌으며 없다가도 풀이 눌린 자리로 길이 나 있었다. (산책)

 

「산책」에서는 ‘숲’이 이질적 공간으로 제시된다. 주인공은 회사에서 지사 근무를 발령받아 그동안 살아왔던 도시를 떠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으로 이사했고, 그 과정은 지나칠 정도로 순조로웠다. 새로 살 집 주변에는 산책을 할 수 있는 오솔길과 숲이 있었으며 모든 것은 평화롭게 보였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사를 하자마자 여러 변화가 일어난다. 임신 중인 아내는 새로 이사 온 집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 하고, 그는 밤마다 멧돼지 소리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 조화롭지 못한 생활은 계속되고 어느 날 그는 산책을 하러 약수터로 가던 중에 ‘숲’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서 길을 잃는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낯선 세계를 헤매고 있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숲은 어둠을 습자지처럼 빨아들여 대지로 뿜어내고 있었다. … 숲에서 들려오는 소리에는 바람 소리, 새 소리, 벌레 소리, 멀리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라고만은 할 수 없는 소리가 섞여 있었다. … 숲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려니 도심 한복판의 빌딩 숲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소음과 냉방기 가동 소음이 그리워졌다. 길을 잃고 숲을 헤맬수록 그는 도시를 잘 이해하게 되었다. … 도시는 끊임없는 소음과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도 도심의 하늘은 그다지 푸르지 않았다. 차들은 끊임없이 매연을 풍기며 도로를 질주했다. 보도에 늘어선 가로수들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서 있었다. 그 모든 풍경이 그에게는 익숙했다. 자연보다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인공이었다. 인공이라는 걸 의식할 수 없었으므로 그에게는 자연이나 다름없었다. … 그는 무겁게 침묵하고 차가운 공기를 내뿜고 등골이 서늘할 정도로 나무로 가득 찬 숲과 그 숲을 품은 소도시가 싫어졌다. 모든 길을 감추는 숲에 비하면 한눈에 모든 길이 훤하게 들어오는 도시는 그야말로 천국에 가까웠다. (산책)

 

온갖 네온사인 불빛으로 열기를 내뿜는 소란스러운 도시를 벗어나면 모든 것이 평화로울 것이라 확신했다. 그러나 그 확신과는 정 반대의 생활을 경험한다. 자연이 주는 안락함과 편안함이 아닌 멧돼지 소리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내의 투정어린 불만에 피로만 쌓여갔다. 그에게 자연은 편안함과 안락함의 공간이 아니었다. ‘숲’은 낯섦과 이질적인 분위기를 주는 공간일 뿐이었다. 그는 ‘숲’이 주는 축축하고 습한 느낌이, 시끄러운 벌레 소리가, 빽빽한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과 나무들이 만든 검은 그림자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새는 불길한 소리로 울었고 풀은 길고 거칠어 바지를 뚫고 무릎에 상처를 입혔다. 그에게 숲(자연)은 낯섦과 그로 인한 불안과 공포를 자극하는 공간이다. 그가 도시를 떠나 자연에서 꿈꾼 이상적인 삶은 숲과 오솔길(자연)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산책을 갔다가 숲에서 길을 잃었고, 낯선 공간(자연)에서 길을 잃은 공포로 극도의 불안을 경험한다. 숲 속의 메아리와 개울 소리보다는 도시의 자동차 소음과 냉방기 가동 소음이 그리웠고, 그는 숲 속의 고요함보다는 끊임없는 소음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그의 현실은 매연과 먼지에 뒤덮인 가로수, 도심의 푸르지 않은 하늘이었고 이것이 그의 평화로운 일상이었던 것이다. 그 평화로운 일상에 자연(숲)이라는 이질적이고 낯선 무언가가 침투한 것이다. 이 갑작스러운 침투는 그의 일상에 변화를 가져온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 그의 일상적인 삶이 깨졌다. 도시를 벗어나 지루한 삶에 변화를 주고자 했으나, 아직 숲(자연)을 받아들일 준비는 되지 않은 상태였다. 동일함을 깨기 위해 새로움을 지향했으나 갑작스러운 변화는 평화로운 일상에 훼방을 놓고 안락함과 편안함까지 앗아갔다.

「정글짐」의 작중 인물 역시 낯선 공간에서 길을 잃는다. 회계 부서에서 일하는 주인공은 회사 감사를 피하기 위해 ‘백’의 강요와 같은 제안으로 계획에도 없던 해외 출장을 떠난다. 해외 출장이지만 해야 할 업무는 없다. 그저 편히 쉬고 여행하고 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업무였다. 사실상 해외 출장 자체가 회계 감사를 피하기 위한 연막이었으므로. 해외 출장만이 숫자와 계산기, 높이 쌓인 장부더미로부터 그를 벗어나게 할 수 있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는 그는 ‘백’이 준 비행기 티켓을 들고 낯선 곳으로 떠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시라도 지친 일상을 벗어나 편히 쉬고자 했던 그의 계획은 보기 좋게 무너진다.

 

그는 백이 다녔던 거리를 쏘다녔고, 백이 추천한 곳에서 밥을 먹었으며 백이 샀던 물건을 샀다. 지치도록 거리를 돌아다녔고 피곤해지면 카페에 들어가 백이 준 가이드북에 첨부된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찾아 숙소로 돌아갈 길을 미리 짐작해보곤 했다.

… 길을 헤매지 않고 숙소로 잘 돌아가는 것이 여행의 유일한 목적인 듯 강박적으로 지도를 들여다보았다. 그 탓인지 숙소로 돌아갈 때면 하루 종일 장부를 정리하고 복잡한 숫자로 채워진 계약서를 들여다본 것처럼 머리가 아팠다.

그는 누군가 자신을 낯선 도시로 내몰았고,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공교히 음모를 꾸몄으며 자신은 순진무구하게도 그 유혹에 쉽게 넘어가버렸다는 생각을 했다. 늘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인생을 살아온 느낌이 되살아나면서 화가 났다. 자신을 통제하는 대상이 있다는 생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그 통제에 안도감을 느낀다는 것 때문이었다.

사내는 특히 백이 좋아하는 미술관 얘기를 길게 늘어놓았다. 그는 천천히 사내를 쏘아보았다. … 식당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침묵을 견디다 못해 그가 불쑥 일어섰다. 사내가 식사를 마저 하라며 그를 잡아 세웠다. 그가 사내의 팔을 뿌리치며 갑자기 욕을 퍼부어댔다. 그의 도시에서 사용하는 욕이어서 외국인들은 알 리 없었지만 그의 표정이나 말투를 보면 못 알아챌 리도 없었다. 그는 왜 사내에게 화를 내는지 스스로도 어리둥절한 채로 사내의 시선에 기가 눌려 엉겁결에 멱살까지 잡았다 .사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는 자신이 바보 같은 짓으로 여행객들의 소박한 친교를 방해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사내를 잡은 팔에 힘을 주었다. (정글짐)

 

숫자와 계산기, 계약서와 장부로부터 벗어났으나 그는 자유롭지 못했고 스스로 무언의 불편함을 감지한다. 비행기 티켓, 일정표, 식당, 가이드북, 숙소. 이 모든 것은 백의 결정이었다. 그가 한 일이라곤 백이 지시한대로 여행을 한 것뿐이었다. 또한 시키지도 않은 영수증을 첨부한 짤막한 보고서를 작성하는 본인 스스로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결국 그의 의지로 행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이드에게 갑자기 욕을 퍼붓고 화를 낸 이유도 알 수 없다.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들로부터 그리고 그 통제에 안도하는 자신으로부터 깊은 환멸을 느껴서일까? 확실한 것은 그는 가이드에게 화풀이를 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그는 무작정 밖으로 나와 자신을 옭아맸던 백이 준 일정표와 가이드북 없이 스스로 식당을 찾아 음식을 주문하고, 무의미한 여행을 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 시계를 들여다보고 지갑을 열어 돈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백이 준 일정표와 가이드북의 부재는 모든 것을 흩트려 놓았고, 백의 계획과 질서로부터 분리된 그의 여행은 혼돈 그 자체이다.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은 그의 모습은 통제로부터의 해방이 관찰됨과 동시에 안도감의 부재를 엿볼 수 있다. 이 안도감의 부재는 이질적 공간(낯선 나라)에 대한 공포와 동일성의 파괴로 인한 공포에 근원을 둔다. 지독하게 자신을 옭아맸던 것들(일정표와 가이드북)과 선택의 여부가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백)에 의해 통제되고 억압된 일상을 탈주하고자 시도했으나 결국 스스로 설계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특히 「정글짐」의 작중 인물이 누군가에 의해 설계된 일상만을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면서도 그에 안도하는 모순적 장면은 세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현대인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설계된 일상, 통제된 일상, 개인의 자유와 선택이 한낱 가치 없는 것으로 전락해버린 일상에 완전히 적응해버린, 심지어 안도감을 느끼는 현대인들의 삶을 낱낱이 고발한다. 또한 동일한 일상으로부터의 탈주에 번번이 실패하는 인물의 복잡한 심리와 반복적 일상의 자각으로부터 오는 낯섦에 대한 공포를 통해 이전과는 다른 유형의 새로운 섬뜩함을 제시한다.

 

 

4. 기괴함과 섬뜩함의 차이 혹은 󰡔저녁의 구애󰡕의 잠재성

 

 

편혜영의 소설은 기괴함과 섬뜩함의 끊임없는 반복으로 구성된다. 평화롭게만 보였던 친숙했던 일상은 점점 낯선 그늘이 되어 그 반경을 넓혀간다. 특히 편혜영의 소설에는 길을 잃는 모티프가 자주 반복되는데, 이를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원래의 일상을 벗어남으로써 길을 잃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원래 일상 즉, 반복적이고 동일한 일상 속에서 길을 잃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나뭇가지들이 팔과 눈을 할퀼 듯 덤벼들었고 키 작은 나무들과 밀집한 관목이 한데 엉킨 수풀이 나타났다. 어쩐지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 느낌이었다. 기시감인지도 몰랐다. 숲이 길어질수록 길은 모두 비슷해보였다. 어디에나 잎이 하늘을 가린 키 큰 나무가 있었고 빼곡한 잡목 덤불이 있었다. (산책)

 

어떻게 사방이 모두 똑같아 보이는 거리에서 그들은 제대로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걸까? 멍하니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 드나들기를 반복하는 것은 그뿐이었다. 어쩌면 모두들 태연히 길을 찾는 듯 보여도 골목 저 끝에서 미로 같은 길을 탓하며 다른 길을 찾아 헤매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자신과 처지가 같은, 어딘가에 있을 열 명 중 한 명을 떠올리며 그는 빛이 점점 흐려지는 가로등과 가로등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원구와 그럼에도 여전히 어두워서 궁극적으로 모두 닮아 보이는 골목들을 애석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정글짐)

 

이는 인물들의 삶에 동일함과 동일함에서 오는 낯섦이 서로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역설적인 공존은 일상의 파괴로 이어지고, 격동하는 일상 속 주체의 자기분열로 이어진다. 작가는 모두 비슷하고, 닮아 보이는 익숙한 공간에서 길을 잃는 모티프를 통해 반복되는 동일함에서 낯섦을 경험하게 했다.(산책, 정글짐) 동일함 속에서 느껴지는 낯섦은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와 같이 역겹고 불쾌한, 날 것 그대로의 그로테스크한 표현(시체, 들쥐, 하수구, 육식동물의 해골, 습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심화된 공포를 선사한다. 이전의 소설들이 하드고어적 상상력을 추구했다면 최근에 쓰인 소설들은 동일함 속 섬뜩함을 찾아내는 것에서 그 차별성을 찾을 수 있다.

 

편혜영 소설은 현대 문학 제도 안에서 추방된 괴담의 상상력을 호출한다. 이것은 현대 문학이 역사적 리얼리즘 혹은 일상적 리얼리티의 이름으로 배제한 세계에 대한 미학적 재발견을 의미한다. 괴담의 서사는 모더니티가 배제한 어두운 세계를 탐구하는 모험이면서, 동시에 미학적 모더니티의 한 극단적인 사례가 된다. … 편혜영은 시체를 시각적으로 대상화하는 데 머물지 않고 인간 존재 자체를 ‘시체 되기’의 국면으로 끌고 나간다. 이 ‘시체 되기’ ‘동물 되기’ ‘벌레 되기’의 상상력은, 인간 존재의 주체화 과정을 해체하고 다른 차원의 삶을 경험하게 만든다.

 

기괴함(grotesquerie)이 낯선 것들과의 조우에서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라면 섬뜩함(uncanniness)은 낯익은 것들이 돌연 낯선 것으로 전화될 때 발생하는 (미학적 효과이면서 동시에) 정치적 효과다. 현실적인 것의 내부로 잠입해 들어가 그것과 뒤섞여 종내에는 현실적인 것의 내부에서 그것을 찢고 나와야 한다. 그럴 때 기괴함은 섬뜩함으로 도약하고, 실재의 미학은 실재의 정치학과 결합한다. 편혜영의 최근작들이 특히 매혹적인 까닭은 편혜영 특유의 실재의 미학(기괴함)이 마침내 실재의 정치학(섬뜩함)으로 진화해가는 국면을 인상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편혜영의 소설은 더 이상 하드고어적 상상력에 기대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억압된 야만의 귀환이나, 자연의 복수보다 더 공포스러운 것은, 우리가 안온하다고, 편안하다고 느끼는 이 문명 자체가 이미 어떠한 차이도 용인되지 않는 야만적인 자연이자 동일성의 지옥이라는 그 사실이다.

 

최근 편혜영은 우리 사회의 반복적인 일상을 가까이서 관찰하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동일성의 지옥’을 고발하고 있다. 익숙함에서 낯섦을 발견할 때 ‘동일성의 지옥’은 더 확장된다. 편안하고 익숙했던 일상이 낯설게 느껴질 때 공포는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 동일성의 공포는 그로테스크, 하드고어적 표현을 통해 의도적으로 불러일으켜지는 기괴함의 단계를 뛰어 넘어 이상한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데에 이른다. 작품 속 인물들은 반복적 일상에서 벗어난 이질적 공간 또는 자신의 반복적인 일상에서 경험하는 낯선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 도시의 불빛과 소음을 그리워하고, 지시받지 않은 보고서를 작성하는 강박적인 행동을 함으로써 낯선 세계를 회피하고, 익숙한 일상으로의 회귀를 꿈꾼다.

그러나 인물들은 낯섦이 부재한 일상으로의 회귀에 실패하고 계속적인 공포와 불안을 경험한다. 이는 작가가 작품 속 인물들에게 일말의 탈출구도 제시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탈출구를 제시하지 않는 의도를 추측해 보면, 작가가 동일성에 잠식된 현대인들의 모습을 낙관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편혜영은 ‘동일성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작품에 길을 잃는 모티프가 연거푸 반복되는 이유 역시 동일한 일상에 잠식된 우리를 끌어내기 위함일 것이다.

 

 

5. 타자로서의 삶과 살아있는 주체

 

 

앞서 언급한 편혜영의 작품 중 기괴함과 불쾌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아오이 가든』(2005)은 ‘두려운 역병의 기운이 감도는 곳’, ‘편두통을 일으키며 혀가 아둔해지고, 코를 맹맹하게 만들며 끊임없이 구역질을 퍼 올리는 냄새’ 등 평범한 일상과는 거리가 있는 생소한 이미지와 배경으로 가득 차 있다. 『사육장 쪽으로』(2007)도 『아오이 가든』보다는 그 정도가 덜하나 ‘사육장’, ‘습지’ 등의 낯선 배경과 이미지로 옅은 불쾌감을 전달한다.

그러나 『저녁의 구애』(2011)에서는 앞서 제시한 요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생소한 이미지와 배경보다는 오히려 주위의 지극히 평범하고 단순한 일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일상 속에서 인물이 경험하는 주체의 혼란과 분열을 관찰한다. 작가는 ‘일상으로부터 오는 낯섦과 공포’를 이야기한다. 여기서는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정확한 기점을 기준으로 나누 순 없지만 『아오이 가든』, 『사육장 쪽으로』, 『저녁의 구애』를 순서대로 비교해보면 편혜영 소설에 미약한 균열이 발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아오이 가든』에서 작가 특유의 그로테스크함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면, 『저녁의 구애』에서는 동일한 일상으로부터 오는 ‘uncanny’(묘한 섬뜩함, 이상함)를 발견할 수 있고, 『사육장 쪽으로』에서는 그로테스크한 배경과 일상적 이미지가 혼재된 과도기적 성격이 확인된다. 이처럼 ‘이미지에서 서사로, 악몽에서 일상으로’의 변화는 편혜영 소설 속 보이지 않는 틀의 붕괴와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저녁의 구애』는 편혜영 소설의 방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특유의 그로테스크적 기괴함은 일상적 기괴함으로 변화했고, 일상적 기괴함은 ‘동일성의 지옥’에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작가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를 첨예하게 보여준다. 동일함이 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은 무방비 상태의 우리를 낯섦이라는 위협으로 몰아넣는다. 「산책」, 「정글짐」, 「크림색 소파의 방」, 「관광버스를 타실래요?」 등 여러 작품에서 검증된 것처럼 작가는 동일한 일상의 낯섦을 주의하라고 당부한다. 동일한 일상의 낯섦은 더 심화된 기괴함을 낳는다. 『저녁의 구애』에 실린 작품들은 그로테스크적 요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확장된 공포와 불안을 조장한다. 익숙함에서 낯설음으로의 변모는 주체의 혼란을 가중시켜 분열을 일으킨다.

본 연구는 편혜영 소설에 드러난 동일한 일상에서 오는 기괴한 낯섦, 불안, 공포의 근원을 파악해 작품에 쓰인 주도적 상징물과 인물 간 관계성, 작품에 제시된 섬뜩함의 유형 분류, 그리고 작품에서 자주 등장한 모티프에 대한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작가는 작품 속에 동일함에 안주하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객관적 상관물을 통해 이에 상징성을 부여했다. 또한 우리 삶 도처에 존재하는 동일성의 공포와 반복적 일상의 무의미함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도시의 소음 속에서 설계된 일상을 살아가는 타자로서의 삶을 반성하고 나아가 개인의 존재와 살아있는 주체의 가치를 깊이 탐색하게 한다.

 

 

 

 

 

 

 

 

 

 

 

 

 

 

 

 

 

 

 

 

 

 

 

 

 

 

 

참고 문헌

 

[작 품]

 

편혜영, 『사육장 쪽으로』, 문학동네, 2007

편혜영, 『아오이 가든』, 문학과 지성사, 2005

편혜영, 『저녁의 구애』, 문학과 지성사, 2011

 

 

[논 문]

 

김형중, 『동일성의 지옥에서』, 『저녁의 구애』 해설, 문학과 지성사, 2011, 237-255쪽

 

서영인, 『이미지에서 서사로, 악몽에서 일상으로 - 편혜영 소설의 변화와 2010년대 소설의 향방』, 2012

 

신형철, 『섬뜩하게 보기』, 『사육장 쪽으로』 해설, 문학동네, 2007, 233-249쪽

 

이광호, 『시체들의 괴담, 하드고어 원더 랜드』, 『아오이 가든』 해설, 문학과 지성사, 2005, 245-263쪽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강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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