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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말아야 할 그들의 흔적조국과 자유를 위해 맞서 싸운 이들을 기리다
오채현 기자, 이로운 수습기자 | 승인 2019.06.03 |(521호)

 의병의 날, 현충일, 6.10 민주항쟁 기념일, 6.25 전쟁일 등 6월에는 한국의 역사를 되돌아 보게 하는 기념일들이 많이 존재 다. 그 중에서도 한국 현대사의 뼈아픈 상처이자 교훈이며 한반도의 자유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던 6.25 전쟁. 또한, 조국을 위해 자신의 의지로 일어나 외세에 맞서 싸웠던 이들을 기리는 날인 의병의 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의병의 날은 의병의 역사적 가치를 일깨워 애국정신을 계승하고자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임진왜란 당시 홍의장군으로 불리며 수많은 공을 세웠던 의병장인 곽재우가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음력 4월 22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짜인 6월 1일을 의병의 날로 지정하여 2010년 지정된 이래 매년 기념되고 있다. 겨레의 시작과 함께 지속되어 온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도 우리나라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음은 의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의병은 우리나라 역사의 중추적인 기둥 역할을 맡아 왔다. 대몽항쟁부터 임진왜란, 조선말기 일제에 대한 항쟁 등 정부의 기능이 약화될 때마다 의병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지키고자 스스로 일어나 외세에 저항하였다. 우리 가사는 군산시에서도 훌륭한 의병장들이 많이 등장했는데, 대표적으로 조선 시대 말기 일제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수호하고자 했던 임병찬과 정홍기를 꼽을 수 있다. 임병찬은 옥구 상평리(현 전라북도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출생으로, 32세 때 태인으로 이주하여 1906년 3월 을사늑약 체결에 반발해 태인 무성 서원에서 최익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그 후 태인에서 의병 모집과 의병 훈련 등의 책임을 졌으며, ▲옥구 ▲정읍 ▲순창 ▲곡성 등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우리나라가 일제에 강제 병합을 당한 후인 1913년 9월에는 고종의 밀지를 받아 독립의군부를 조직했으며 이후 독립 의군부를 통해 의병을 모집해 일제 통치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계획 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정홍기는 옥구(현 전라북도 군산시) 출신으로 일제가 1907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키자 국가가 존망의 위기에 있다고 생각하여 의병 전쟁에 가담하였다. 정홍기는 전북 고산을 배경으로 활동했던 유지명 의병 진영에 들어가 ▲고산 ▲용담 ▲전주 등에서 일제 침략의 첨병인 행정 기관들을 습격하여 파괴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의병 활동에 필요한 자금 확보를 위해 군수품과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에도 주력하였다.

 외롭게 싸워왔던 이들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가 무능력한 상황에 부딪칠 때마다 중추적인 기둥 역할을 맡아왔다고 과언이 아니지만, 언제나 사람들의 관심 밖에 있으며 외면당해왔다. 대몽항쟁과 임진 왜란 당시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의병들은 전쟁이 끝나자 반란을 우려한 정부에 의해 숙청당하였으며, 조선 말 의병활동을 하다가 한일 합병 이후 독립군이 된 이들 또한 광복 이후 그 이름과 공이 대부분 잊히게 되었다. 의병의 날 또한 의병의 존재만큼 인지 도가 낮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이태령(IT융합통신·19)학우는 “의병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역사를 배우며 공부한 적이 있어 알고 있었지만 의병의 날이라는 기념 일은 처음 들어보았다. 이런 기념일이 전국 적으로 널리 퍼지고 우리 대학 내 학우들 에게도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라고 답하였다. 직위와 녹봉도 없었던 이들은 어떠한 대가도 바라지 않고 조국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나가 싸웠다. 우리 또한 그들이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에 의병이라는 존재는 역사에서 그 누구보다 빛나야 하는 존재들임이 분명하다. 매년 6월 1일이 되면 이러한 의병들의 숭고한 정신과 노력을 기리며 감사하는 시간을 가져보도록 하자.


6·25 전쟁은 3년에 걸쳐 진행되는 동안 전국을 통틀어 200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전국의 산업기반이 파괴되어 경제 또한 피폐해졌다. 또한 남북한의 왕래가 완전히 끊김으로써 발생한 이산가족 문제는 현재까지 우리 민족의 아픔으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렇게 우리 나라에 많은 상처를 남긴 6·25 전쟁은 자유와 평화에 대한 경각심과 소중함을 일깨워주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 지 근 70주 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우리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준다는 데에서 의의가 있다. 매년 6월 25일을 맞아 전국에서 6·25 전쟁이 남긴 상흔과 그 교훈을 잊지 않고자 많 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군산해양경찰서에서는 6·25 전쟁일 69주년을 맞아 초·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안보사랑 글짓기를 개최하는 등 우리 지역 내에서도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적인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 공대 2호관 뒤에 위치한 6.25희생자 추모비 / 촬영 : 오채현 기자

우리 대학에도 공대 2호관 뒤에 표지판 을 따라 숲 속 계단을 올라가면 6·25 전쟁 참사 현장이 있다. 1950년 9월 27일 북한군에 의해 집단학살 당한 120여명의 민간인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이에 신주원(나노화학공학·18) 학우는 “우리 대학에 이렇게 역사적인 장소가 있을 줄은 몰랐다. 기회가 된다면 친구들과 함께 가 볼 것이다.”라고 전했다. 또, 박소현(간호학·19) 학우는 “군산 시민들이 당 한 일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더욱 많은 학우가 이 장소를 알고 방문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어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진 않지만, 이번 계기로 방문해 보는 건 어떨까. 
 

 

오채현 기자, 이로운 수습기자  orange5454@kunsan.ac.kr, roun0106@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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