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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8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대상 (소설)봉투 무덤
관리자 | 승인 2019.12.31 |(0호)

봉투 무덤

 

 

 

혼수상태였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뿌리 없는 국화 같았다. 물속에 담긴 채 언제 상 앞에 놓일지 모르는 국화처럼 사람들이 그를 꺼내어 영정사진 앞에 놓기만 하면 되는 상태였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숨이 끊겼을 때, 가족들은 그를 냉동실로 모셨다. 물에 담긴 꽃이 천천히 숨죽듯 할아버지도 천천히 숨죽였다.

친척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애도의 순서를 기다렸다. 좁아터진 상갓집에서 일렬종대한 채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들이 낯설지 않았다. 장난기 심한 중학생 남자아이들이 선생에게 혼날 때면 꼭 저런 모양이었다. 그들은 팔에 하얀 띠를 두른 아버지와 남동생에게 절했다. 못 본 사이 너무 많이 커버린 동생은 어딘가 화가 난 얼굴을 하고 있어, 팔에 두른 띠가 상주보다는 선도부의 것으로 보였다.

고모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곤 호주에서 날아왔다. 10년간 침상에 누운 할아버지에게 한번을 안 찾아오더니, 사진이 되어버린 할아버지 앞에선 곡소리를 내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녀는 ‘아이고 브라더, 오 마이 갓 우리 오빠’ 하며 자꾸 눈가를 훔쳤다. 침까지 튀기며 요란하게 움직이는 입과 달리 막상 눈가엔 메마른 삶의 나이테만 자글자글했다.

빈소에는 나 홀로 남아있었다. 다른 이들은 전부 염을 하러 떠났고, 나는 불 속으로 들어가실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보는 대신 부의함을 지켰다. 여기서 깨달은 건 영정사진 앞에서 쏟아내는 눈물의 양과 함에 들어오는 조의금의 액수가 비례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식장을 뛰어들어 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 오열했지만, 따로 입장료를 내진 않았다. 밥맛은 없어도 고인 가는 길을 위로하기 위해 고기는 몇 점 집어먹고 퇴장했다. 후불제 역시 가능했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없었다. 대신 무슨 외상을 달아놓듯 방명록에 이름은 꼭 적곤 했다. 짐승은 죽으면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던데, 그게 혹시 이 방명록을 빗댄 말은 아니었을지.

“어른 안 계시니?”

장례식장 매니저는 빈소 안으로 머리를 슬쩍 넣어 동태를 살폈다. 그는 나뿐인 것을 확인하더니 얼른 손수레를 마루 위로 끌어 올렸다. 매니저는 과일과 국화 따위가 든 손수레를 영정사진 앞으로 가져왔다. 검은 액자에 갇혀 웃고 계신 할아버지 앞의 국화는 물속에 있었음에도 수분이 다 빠져 잎이 노랗게 세었다.

“저… 스물 하난데요.”

찾는 어른은 내가 아니었는지 그는 내 말을 무시했다. 매니저는 잎이 센 국화를 새것으로 교체하고 재로 더러워진 상을 닦았다. 이어 변색된 대머리 사과를 거둬가더니 싱싱한 과일로 상을 채웠다. 딱 하루. 하루 상온에 방치됐던 사과의 자리는 금세 새로운 사과가 대신했다.

“이건 어른 전달해주고.” 매니저는 새로 차린 상의 가격이 적힌 영수증을 건넸다.

상대가 성인인 걸 알았음에도 반말을 하는 태도는 성숙하지 못하다. 더군다나 고객에게 다짜고짜 반말이라니. 매니저가 건넨 영수증을 부의함 옆 서랍에 처박아 버렸다. 물론 그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얼른 다른 빈소로 가서 상을 차려야 할 테니까.

서랍에는 금세 자잘한 영수증들이 한 움큼 쌓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장례식의 모든 게 돈이었다. 육개장이냐 뭇국이냐를 정하는 것도 돈이었고, 절편인지 꿀떡인지, 육전인지 호박전인지까지 전부 돈이었다. 하지만 나의 노동은 셈에 포함되지 않았다. 시급으로 따지면 한 시간에 8,350원, 야간수당에 장례식 총 3일을 곱하면 15만 원도 넘는 인건비다. 조부상을 핑계로 알바까지 빼고 왔으니, 오히려 손해였다. 그 돈이면 액정이 박살 난 채로 3년째 사용 중인 핸드폰 액정정도는 고칠 수 있다. 휴대폰을 바꿀 순 없지만, 셀카를 찍을 때면 내 이목구비가 조각나 보이는 액정쯤은 갈 수 있다.

 

부의함 앞에 앉아 휴대폰을 하는데 염을 마친 친척들이 돌아왔다.

“예은아, 상 좀 차려라.”

아버지는 벌게진 눈을 만지며 말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부분 눈이 시뻘겠고 동생 놈만 뚱한 얼굴로 들어와 상 앞에 자리를 잡았다. 쟤는 앉자마자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출고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최신형 휴대폰이었다.

할아버지의 부고를 들은 엄마와 나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었다. 지하상가에 놀러 갔다가 검은 재킷이 싸기에 사뒀는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한겨울에 입기는 민망한 여름용 재킷이었지만 상에 입고 가기에 나쁘지 않은 재질이었다.

“얼굴에 선크림이라도 발라.” 엄마는 머리에 열심히 뽕을 넣으며 잔소리했다.

“종일 안에만 있을 텐데 선크림은 무슨.”

감지도 않은 머리를 손빗으로 빗고 있자, 엄마가 직접 선크림을 가져다줬다.

추잡스럽게 가면 느그 애비 식구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니. 애미랑 단둘이 사는 불쌍한 그지 취급받기 싫으면, 얼른 이거 발라. 이내 그녀는 고가의 검정 백을 집어 들었다. 거울 앞에 서 단정히 옷매무새를 만지는 얼굴이 어쩐지 들떠 보였다. 엄마는 상갓집을 방문함에도 불구하고 꽤 진한 화장을 했고 명품 코트와 가방을 꺼내 곱게 다렸다.

가난하고 불쌍한 거 사실인데, 뭐. 엄마 딸은 매일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느라 수시로 몸이 아프다가 결국 휴학까지 했잖아. 하지만 뽀얗고 기름진 얼굴을 한 동생과 비교당하는 상상을 하고 있자니 거울 앞을 서성거리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는 갔다. 나는 결국 선크림에 비비까지 발랐다.

 

“너 선크림 발랐니?”

깨작깨작 밥알을 가지고 노는 동생 옆에 앉았다. 한창 여드름이 올라올 시기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얼굴은 말갛게 빛나고 있었다. 웬 선크림. 동생은 퉁명스럽게 말하곤 젓가락으로 고기를 뒤적거렸다.

“어제는 수육이더니 오늘은 왜 편육이야.”

그치, 네가 깨작거리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다섯 살배기일 때도 곧 죽어도 맛있는 것만 먹겠다며 떼를 쓰던 놈이었다. 촉촉하고 따뜻하던 수육에서 딱딱하고 차갑기 그지없는 편육으로 바뀌자 금방 흥미를 잃었을 거다.

“수육이 비싸대.”

나는 김칫국물이 묻은 편육을 손가락으로 대충 집어 입에 넣었다. 짓이겨져 하나로 뭉쳐있던 돼지 부속물들이 입안에서 다시 풀어 헤쳐졌다. 물렁뼈가 입안을 돌돌 도는 감촉이 썩 좋아, 냉큼 한 조각 더 입에 밀어 넣고 손에 묻은 기름은 치마에 대충 닦아냈다. 상복도 다 돈 내고 빌린 건데, 기름이 묻는 것쯤이야 괜찮다.

고기가 바뀐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중요한 손님들은 어제 다 방문했고, 오늘은 ‘편육 수준’의 손님들이 오는 날이니까. 엄마의 직장동료들도 오늘 찾아오겠다며 연락이 닿았다. 엄마는 전(前) 시아버지 상에 뭣 하러 오느냐며 민망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에 찬 얼굴이었다. 아마 어제와는 빈소 분위기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이혼한 부부의 동창들이 몰려와, 대학 시절 두 사람의 연애담을 늘어놓다가도 어느 순간 분위기가 싸하게 내려앉는 괴이한 현상은 일어나지 않겠지.

나는 한편으로는 군대에 있는 전 남친을 떠올렸다. 같은 학과 대표 캠퍼스 커플이었다가 보기 좋게 이혼한 부모를 코앞에서 보고 자랐으면서도 잘도 같은 과 선배를 사귀어버렸다. 금방 헤어지고 그는 군대로 도망쳐버렸지만,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내가 도망쳐야 하겠지. 오는 게 있으면 가는 게 있다고, 그가 자리를 한번 비워줬으면 나도 한번은 비워줘야 맞는 계산이다. 비록 그는 지금 여기에 오지 못했지만.

비가 쏟아지던 날, 버스를 타고 청량리까지 찾아갔었다. 남자친구 할아버지 상까지 찾아가야 하나 싶다가도,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옛말을 새기며 오만 원을 인출했었다. 지금 하는 아르바이트 일급도 오만 원이 채 안 되는데, 작년에는 최저 시급이 더 낮았으니 오만 원은 큰돈이었다. 애도하는 마음을 봉투에 가득 담고 방명록에도 정확히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관계가 부서지고 남은 건 돌려받지 못한 금액뿐이었지만.

“여기, 여기!”

뒷면에 카메라를 세 개나 달고 있는 동생의 신형 휴대폰을 힐끔거리며 밥을 먹는데, 별안간 동생이 벌떡 일어섰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식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둘, 넷, 다섯. 남자 셋에 여자 둘. 재빨리 일어나 동생이 앉은상에 추가로 밥과 국을 퍼 날랐다. 여름용 재킷 대신 교복 마이를 입은 애들은 방명록을 대충 휘갈기곤 영정사진 앞에서 어정쩡하게 예를 표했다. 죽음이 뭔지도 모를 나이의 아이들은 곧장 동생 곁으로 몰려왔다.

야야, 너 기사 봤어? 걔 마약했대, 아니야 아직 부검결과 안 나왔대, 병신아 부검을 왜 하냐. 몸에 딱 달라붙는 교복을 입은 아이들은 동생 주변에 앉으며 오늘 있던 유명 연예인 대마초 사건에 대해 떠들어댔다. 침울하던 장내가 순식간에 떠들썩해졌다.

막 20살이 되었을 때, 알바생으로 들어간 카페 점장님의 결혼식이 있었다. 그때 함께 일하던 언니가 결혼식장 홈페이지를 열심히 뒤지던 모습이 기억난다. 뭘 하냐 물으니, ‘축의금 계산 중’이라고 답한 그녀는 예식장의 1인 식사비용을 검색했다. 압구정에 위치했던 식장이라 인당 밥값만 칠만 원을 웃돌았는데, 그 언니가 결국 얼마를 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교복을 입고 하얀 봉투에 오만 원을 넣어갔다. 봉투 겉면에는 ‘평생 행복하게 사세요!’라는 저주를 적어놓곤.

동생 친구들이 찾아온 후 부엌 구석에 앉아서 휴대폰을 보다가 문득 점장님 생각이 났다. 메신저로 그녀의 아이디를 찾아보곤 프로필 사진을 누르자, 활짝 웃고 있는 웨딩사진이 크게 확대됐다. 깨진 액정 뒤로 산산조각이 난 부부를 구경하다가 생각난 김에 점장님에게 말이라도 붙일까… 에이, 됐다. 이내 휴대폰 화면을 꺼버렸다. 대신 메신저 상태 메시지를 다시 수정했다. ‘조부상 아산병원’에서 ‘조부상 아산병원 ~1/15’로.

 

저녁 6시가 넘자, 엄마의 직장 동료 두 사람이 찾아왔다. 엄마는 오늘 하루 중 처음으로 웃어 보이더니 얼른 상을 차리고 셋이 둘러앉았다. 비싸다고 냉장고에서 꺼내지 말라던 음료들도 종류별로 꺼내와, 도란도란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마침 손님이 몰려올 시간이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 일손이 빠지자, 아버지 옆에서 작은 상주 노릇을 하던 동생이 붙어 찬을 옮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마저도 엄마의 부름에 상 앞에 가 앉아버렸지만.

뿌린 대로 거둔다고, 동생 얼굴에는 엄마의 이목구비가 진하게 남아있다. 아주머니들은 누가 봐도 모자지간이라며 박수를 치고 웃었다. 그 웃음소리를 들었는지, 할머니는 냉큼 동생을 빼앗아갔지만. 엄마는 동생이 떠난 자리에 나를 앉혔다. 건너편에 앉은 아주머니는 살갑게 웃으며 내 얘기를 자주 들었다고 했다. 해주는 말씀마다 칭찬이라 민망했지만 내심 기분은 좋았다. 엄마가 옆구리를 콕콕 찌르기 전까지만 해도. 일하는 딸래미를 구출하려고 부른 줄 알았더니만, 엄마는 내 주머니에 두툼한 돈 봉투를 집어넣었다.

“얼른 엄마 가방에 숨겨놔. 틈틈이 봉투 잘 들어있나 확인하고.”

두툼한 돈 봉투를 보니, 이제야 부의함을 못 본 척 지나쳤던 아주머니들이 이해됐다. 돈은 아마 엄마 직장 동료들의 몫을 전부 걷어온 것일 테다. 엄마가 그간 찾아다닌 수많은 상갓집, 그곳에 넣은 엄마의 애도가 돌아온 거다. 뿌린 대로 거두었을 뿐이다.

나는 불룩해진 치마 주머니를 두 손으로 감싸곤 빈소 구석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작은 쪽방이 딸려있었는데, 침대가 놓인 쪽방에선 고모가 침대에 누워 눈을 붙이고 있었다. 괜히 그녀가 의식돼, 까치발을 하곤 엄마의 가죽가방을 더듬거렸다. 산 지 십몇 년이 됐는데도, 새것처럼 반질거리는 질감이 생경했다. 녹 냄새가 나는 지퍼를 열어 돈 봉투를 넣어두곤 옷걸이에 걸린 엄마의 목도리를 차곡차곡 개어 가방 맨 위에 넣었다.

엄마는 늘 큰돈을 운반할 일이 있으면 늘 이 가방을 애용하곤 했다. 십 년도 더 전에, 곗돈을 가방에 넣고 버스를 탔다가 소매치기를 만난 적이 있는 가방이었다. 붐비는 버스 안에서 누군가 가방 지퍼를 열기에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더니 그만 엄마의 손에는 상처가 나버렸단다. 범인은 마침 정차한 버스를 내리며 손가락 사이에 낀 면도칼을 은밀히 보여 줬다고 했다. 엄마는 분명 그놈이 입 모양으로 ‘다음에는 얼굴을 그어버릴 것’이라 협박했다며 신이 나서 얘기했다. 어쨌든 가방 맨 위에는 엄마의 카디건이 들어있었고, 곗돈은 무사했다. 비록 손에서는 피가 철철 흘렀지만. 그녀는 그 이후로 이 가방을 애지중지하기 시작했다. 한술 더 떠, 손에 길게 난 상처도 자랑스러워했다. 범행을 막은 일등 공신이 바로 이 명품 가방이라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방에 쌓여있는 친척들 가방 중에는 엄마의 가방보다 좋은 브랜드가 몇 개나 더 있었다. 엄마가 제 몸보다도 아끼는 가방이 이 상갓집에서는 서열이 쭉 밀려났네. 엄마는 가방에 돈과 무용담과 영광의 흉터를 넣고 다니는데, 저 가방들 속에는 뭐가 들어있으려나. 어둠 속에서 손을 휘적거리자 손끝에 소가족이, 뱀 가죽이, 악어가죽이 닿았다. 지퍼로 잘 꿰매놓은 짐승들의 아가리도 만져졌다. 굳게 닫힌 그 단단한 입술을 느끼려는데, 갑자기 쪽방의 문이 스르륵 열렸다. 잠든 줄로만 알았던 고모였다.

“뭐하니?”

“아… 칫솔 좀 꺼내게요. 어디 가세요?”

어, 난 화장실. 고모는 손에 들린 안경을 고쳐 쓰곤 침대 방 바로 옆에 있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문이 열리자 밀려오는 조명 빛에 반짝이는 안경 렌즈를 보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후딱 가방들을 정리하곤 밖으로 나와 다시 국과 밥을 날랐다.

 

*

오랜만에 만난 나의 부모는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양보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으면, 애초에 이혼 같은 걸 하지도 않았을 터였다. 아직 장례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두 사람은 시간만 나면 언쟁을 벌였다. 조문객 중 엄마 쪽 손님의 금액은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주 논쟁이었다. 조의금을 낸 엄마의 손님들이 먹은 밥값은 어떻게 분배해야 하는지, 더 옹졸한 부분까지 들어가자면 엄마의 친구인지, 아버지의 친구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대학 동창들의 조의금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도 문제였다.

“당신이 예은이한테 뭘 해준 게 있다고, 시아버지 돌아가시니까 홀랑 불러서 일이란 일은 다 시켜?”

“나 참…. 언제 와서 반찬 나르는 거 도와 달래? 아직도 내 마누라인 양 행세하다 보니까 둘이서 일 다 하고 있던 거지!”

“그게 할 말이야? 얘는 지금 알바까지 싹 빼서 나왔구먼. 애비란 인간이면, 애 일당에 용돈 겸해서라도 챙겨 주고 싶겠다!”

둘 다 창피한 줄은 알아서, 식장 야외 주차장까지 나와서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덕분에 영문도 모르고 상복만 입은 채 끌려 나온 나는 이 말싸움의 제물이 되어 추위에 오들오들 떨게 생겼다. 어둠 속에서 왕왕 메아리치는 고함이 동물의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게 돈이다. 반찬 나르는 아주머니를 고용하는 것도 돈인데, 그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일 해줬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화가 날 법도 했다. 따지고 보면 이제 가족도 아니니까. 입안이 까끌까끌했다. 상갓집에 온 이후로 양치를 제때 못하기도 했고, 잠을 편히 잘 수도 없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일꾼이 되어 할머니 눈총을 받으며 일하는 것도 불쾌했다. 하지만 고작 돈 때문에 죽음 앞에서 벌어지는 이 구질구질 싸움만큼 불쾌하지는 않았다. 단지 이들이 내 부모라는 사실은 꽤 우울했다.

결말을 짓지 못한 싸움이 끝나고, 식장으로 돌아오니 엄마의 손님들이 북적였다. 대여섯 명의 아주머니 가운데 수녀복을 입은 사람이 서 있었다. 엄마가 일하고 있는 천주교 요양원의 수녀가 찾아온 모양이었다. 엄마에게는 상사가 찾아온 격이라 허겁지겁 다가가 손님맞이를 시작했다. 나는 아주머니들에게 ‘K대 다니는 딸내미 아니야’라는 말을 몇 번씩 들으며 다시 상을 차리러 떠났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조문객들은 할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예를 차리기 전에 식사부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정 사진 앞에서는 ‘하늘로 떠나는 영혼을 위한 기도’ 노래가 30분 째 진행 중이었다. 전 시아버지든 뭐든, 하여튼 사람이 떠났으면 복을 빌어주는 게 종교의 윤리라고 했다. 몇 곡 째 이어지는 성가는 고운 화장을 한 엄마의 얼굴에 주름을 새겨 넣었다. 아버지는 10분 째 그 곡소리를 듣다가, 전화가 온 척 자리를 떠나버렸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뵙기 전, 식사 중인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술잔을 기울이던 아버지는 이제 내게 심부름을 시키지 않았다. 원하는 반찬이 있으면 직접 가지러 왔다. 아버지는 엄마처럼 같이 살지 않는 자식을 불러다 앉혀 지인들에게 핏줄임을 밝히는 일 따위 하지 않았다. 내가 찬을 옮겨다 주질 않으니, 아버지의 지인 중 그 누구도 나의 존재를 먼저 물어오는 일도 없었다. 아버지의 지인들과 반갑게 인사하는 동생을 보고 있으려니 뒷목이 다 뻐근했다.

“아이고, 수녀님. 식사하고 가셔야죠.”

영혼을 위한 기도가 끝이 났는지, 수녀와 그 일행이 신발을 가지러 나왔다. 엄마는 기도까지 해주셨는데 식사를 하고 가라며 그들을 잡아끌었다. 물론 수녀님과 자매님들은 앞서 방문한 동료의 봉투에만 조의를 표했을 것이다. 그들은 방명록을 쓰지 않았다. 엄마는 상사 같은 자매들을 데려와 커다란 상 앞에 앉혔다.

“예은아, 얼른 상 좀 내와라.”

나는 허겁지겁 움직였다. 다른 친척들은 수녀가 앉은 상에 밥과 국을 놓지 않았다. 오로지 나 홀로 국을 푸고 밥을 퍼서 잘 옮기고 눈치껏 음료수 몇 캔을 꺼내 날랐다. 마침 편육이 한 상자 더 들어와, 나는 얼른 접시에 편육을 양껏 담아 내왔다. 엄마는 흐뭇하게 웃으며 내 소개를 시작했다.

여기, 우리 딸…. K 대… 응, 아이고, 아니에요. 다들 성의 보여주신 건 잘 받았는데, 그걸로 등록금 내고 뭐 그럴 일은 없어요. 우리 애는 매번 장학금 따와. 용돈도 직접 벌구. 이번에 안 좋은 일 있는 김에 잠깐 알바도 쉬고 좋지. 아이, 얘는 지 알아서 잘한다니까요.

목구멍에 뜨거운 구슬이 걸린 듯 턱, 숨이 막혔다. 장학금은 개뿔. 한 학기에 사백이 넘는 학비를 위해 휴학하고 종일 알바나 하고 있는데. 엄마는 직장동료들이 보내준 돈 봉투에 대한 감사를 작게 속닥이곤, 이내 누구든 들으라는 듯 큰 목소리로 내 칭찬을 쏟아냈다. 나는 엄마의 거짓말에 맞장구를 치는 대신 사선에 앉은 아버지를 힐끔거렸다. 차라리 등록금이 없어 휴학했다고 울기라도 하면 어땠을까. 엄마에게 조의금 일부를 흔쾌히 건네주진 않았을까. ‘예은이 용돈 겸 등록금으로 써. 우리 딸 고생 좀 그만 시키고.’ 어느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 한 번쯤은 들어본 것 같은데.

 

*

동생이 얘기나 하자고 불러낸 건 의외였다. 중학생 꼬맹이와 무슨 할 말이 있겠냐만, 안에만 있는 게 답답해 그냥 나와 버렸다. 우리는 매점에서 바닐라 맛 쿠키를 사들곤 그 앞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각자의 휴대폰과 대화했다. 공기 속에 온갖 소음은 섞여 있는데, 그중 우리의 목소리는 단 한 음절도 들어있지 않았다. 내기라도 하듯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마지막 쿠키 한 조각이 남을 때가 되어서야 내가 먼저 말문을 텄다. ‘너 먹어라.’

말을 트자 대화는 금방 길어졌다. 동생은 영혼을 위한 기도를 들으며 40분씩이나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하필이면 아빠 다리도 아니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어서 정말 죽을 맛이었다, 중간에는 작은 아빠가 졸다가 앞으로 고꾸라질 뻔했던 일까지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그리고 거기엔 아버지 이야기도 껴있었다.

“아, 맞다. 아빠 애인 생겼어.”

“뭐?”

“같은 직장 과장이랬나.”

동생은 머리를 긁적였고 나는 컵 리드를 열어 커피를 벌컥 들이켰다. 딸려 들어온 얼음이 목젖을 때려 헛기침이 터져 나왔다. 아, 이제야 아버지의 계산이 이해가 간다. 엄마랑 나는 애초에 장례식 일을 도우면 안 됐다. 떡 줄 생각도 없는 손님이 와서 별안간 봉사하는 꼴이었다.

“야… 너는, 괜찮냐?”

기침을 가라앉히자 헐렁한 상복을 입은 중학생이 눈에 박혔다. 그런데 걔는 손에 쥐고 있던 신형 휴대폰을 딸랑딸랑 흔들더니 ‘이거 아줌마가 사준 거야.’ 어깨를 으쓱하고 말아버린다. 그러더니 그 아이는 주머니에서 오만 원짜리 한 장을 꺼냈다.

“아빠가 준 거야.”

동생은 냉큼 받아들지 않는 내 손바닥 대신, 테이블 위에 노란 종이를 남겨두곤 다시 어린 상주 노릇을 하러 떠나버렸다. 주머니 속에 꽤 오래 들어있었는지, 웃는지 우는지 모를 얼굴을 한 신사임당이 보기 좋게 구겨져 있었다.

 

빈소에 돌아와 돈을 다시 동생에게 돌려주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지만, 나는 꼭 그래야만 했다. 상갓집에 온 지 40시간이 다 되어서야 생긴 급여였지만, 이 작은 종이가 어떤 빌미라도 만드는 걸 원치 않았다. 예를 들면, 아버지가 그래도 용돈은 줬다고 변명하는 꼴말이다. 적어도 최저 시급은 맞춰주든가. 오만 원이면 남 결혼식에 내는 돈이잖아. 아니면 메시지라도 적어놓든가. ‘평생 사랑하며 살아라!’ 이런 거.

 

*

헤어진 연인을 뜻밖의 자리에서 다시 만나는 건 생각보다 달가운 일이었다. 짧은 머리를 어색하게 매만지며 술을 들이켜는 게 꼭 엊그제 데이트했던 상대 같아 어쩐지 낯간지러웠다.

“참… 사람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다, 그치?”

그는 내 쪽을 힐끗거리며 오징어를 집어넣었다.

“휴가 나온 사람이 왜 마른안주만 먹어, 고기 먹지.”

고기라고 내주기에 민망한 부속물 덩어리를 건네자 그는 헛헛하게 웃었다. 배불러, 배불러. 민망하다는 듯 목덜미를 긁적이며 배부르다 말을 흐리는 것까지 여전했다.

사랑을 하는 데에는 돈이 많이 들곤 했다. 밥 한 끼를 먹어도 돈이었고, 하물며 섹스하는 것까지 돈이었다. 싸구려 모텔 대실비가 아쉬워 우리는 콘돔을 아끼곤 했다. 그는 항상 배달 온 자장면에는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배불러, 배불러. 말라빠진 뱃가죽을 금성반점 전단으로 가리곤 어색하게 웃었다. 금성반점은 그 동네에서 유일하게 자장면 한 그릇도 배달을 해주던 곳이었다.

나의 전남친인 고훈은 마침 휴가를 나온 와중에 내 메신저 상태 메시지를 발견했다. 비가 오던 날 멀리까지 조부상을 찾아왔던 나를 기억했고, 동기들의 애도하는 마음을 걷어 봉투에 담아왔다. 아마 마음속에는 식지 않은, 어쩌면 식었지만 입대와 함께 다시 끓어오른 애정이 있을 것이다.

그는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않았다. 나는 찬을 옮기다 간간히 그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눴고, 그는 마른안주와 소주 두 병 외에는 별다른 요기를 하지 않았다. 어른들이 가끔 ‘너는 누구냐’ 물어도 고훈은 그저 학교 선배이며, 대표로 찾아왔다고 일축했다. 내내 내게 요만큼의 관심도 없던 친척들이 고훈에겐 뭘 그리 궁금한 게 많았을까.

새벽 3시쯤이 되어서야 접객실의 사람들이 죄 빠져나갔고, 남은 건 고훈과 아버지의 동창 몇뿐이었다. 친척들은 교대로 침대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고 엄마는 가끔 가방이 든 방을 불안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왜 아직도 안 가고 있어.”

늦은 시간까지 남아있는 고훈이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그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오물거렸다. 어려운 부탁을 할 때면 꼭 저런 입 모양을 하곤 했다. 자기 할아버지 상에 찾아와줄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도, 저런 입 모양이었다. 물론 직접 보진 못했지만, 수화기 너머 들리는 목소리가 딱 저 입 모양에서 태어난 소리였다.

“실은… 할 말이 있는데….”

그는 볼께에 열이 오르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곤 잠시 고민했다. 목까지 빨갛게 올라온 술기운이 이상하게 시선을 끌어당겼다. 무슨 말을 하려고 지금까지 이 자리에 앉아있었을까. 밤과 술의 힘을 빌려야만 하는 이야기였겠지. 그래도 친척들 다 있는 상갓집에서 이렇게 오래 앉아있으면 좀 그렇지 않나. 하긴, 앞으로 볼일도 없을 텐데. 자꾸 뜸을 들이는 그를 보고 있자 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답답함에 못 이겨 그를 쿡 찌르려는데, 그보다 고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앗, 깜짝이야. 하고.

“저, 저녁 시간부터 지금까지 여기 방 들락날락한 사람들 다 나와 봐요!”

고훈을 놀라게 한 범인은 엄마였다. 그녀는 손에 애지중지하는 검은 백을 들고 있었다. 얼굴에는 당황과 분노가 범벅되어있어,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짐작이 갈 정도였다. 가방에서 반쯤 삐져나온 목도리가 시체처럼 힘없이 늘어져 있었다.

“빨리 이리 모여 보래두!!”

“무슨 일인데 소란이야!”

이어지는 엄마의 고성에 아버지가 언성을 높이며 일어섰다. 엄마는 아버지를 앞에 두고 별안간 가방을 뒤집어 탈탈 털어냈다. 그 안에서 별 볼 일 없는 로드샵 쿠션이랑 립스틱, 휴지, 목도리, 열쇠, 메트로시티 가품 지갑이 쏟아졌다.

“봐, 보라고! 없어, 없잖아!”

그녀는 절규하듯 소리쳤다. 엄마 말이 맞았다, 내가 가방 맨 밑에 곱게 모셔둔 하얀 봉투가 없어졌다. 두툼하니, 엄마가 그간 온 사방에 투자하고 다닌 수많은 부의금이 없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다가가 어깨를 잡고 털어댔다. 그의 손에 잡힌 엄마가 부드럽게 앞뒤로 휘청거렸다.

“아까부터 진짜 해보자 이거야?”

아버지는 거세게 엄마를 흔들어댔다. 엄마는 눈을 질끈 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입 주변으로 자글자글 피어난 주름들이 꼭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입술처럼 보였다. 언뜻 눈물을 흘리려 애쓰던 고모할머니의 눈가 주름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니면 고훈의 입술. 고훈이 뭔가를 망설일 때도 꼭 저렇게 입가에 주름이 잔뜩 지곤 했다.

“누구야, 누…누가!”

아버지의 손에서 속수무책으로 굴려지던 엄마는 그를 밀쳐내곤 방으로 들어가 친척들의 명품백을 모조리 꺼내왔다. 그녀의 품에 안긴 소, 뱀, 악어가죽이 조명을 맞아 번지르르하게 빛나고 있었다. 엄마는 망설이지 않고 가방의 지퍼를 벌려 그 속을 탈탈 털어냈다. 가방에서 떨어진 파우더 콤팩트는 깨져서 가루가 날리고 지갑에 달려있던 금박의 브랜드 로고는 가볍게 떼어져 버렸다. 짐승이 방금 막 먹은 음식을 게워낸 것처럼 가방에서 쏟아진 물건들은 엉망진창으로 섞이고 부서졌다. 어떤 립스틱이 누구 건지 알 수 없을 알 수 없었다. 비슷한 종류의 립 제품이 바닥에 뿌려졌다.

“예은아… 어머니, 괜찮으신 거야?”

손등에 체온이 겹쳐왔다. 고훈의 것이었다. 그는 엄마의 원맨쇼에 나와 함께 푹 빠져 있다가 먼저 정신을 차렸다. 입안에 방금 먹은 편육의 물렁뼈가 돌돌 굴러다니는 게 느껴졌다.

“응… 별일 아닐 거야.”

장례식장에서 고작 돈이 사라진 게 뭐 큰 대수라고. 손에 닿은 그의 손을 꽈악 잡았다. 하지만 맞잡았던 손은 금방 풀렸다. 할머니가 우리 사이를 헤치며 엄마에게 뛰어갔기 때문이었다. 기운도 좋으시지, 할머니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년아, 이 썅년이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구나!”

“이보세요, 어머니! 그게 아니라… 지금 정말 중요한 게 없어졌단 말이에요!!! 어머님이 뭘 아신다고!!”

엄마가 지지 않고 할머니에게 언성을 높이자, 이번엔 고모가 꽤액 소리쳤다.

“아악!!! 어, 어디 갔지?”

고모는 손때가 묻은 악어 가방을 들고는 그 안을 뒤졌다. 이미 엄마가 가방 안을 탈탈 털어내 안에는 먼지밖에 없었지만. 고모는 빈소 바닥에 흩어진 제 물건들을 주우며 계속해서 어디 있어, 어디 갔어! 오빠, 어떡해. 아이고 어떡해. 남모를 소리만 해댔다.

“뭐야, 봉투 없어졌어?”

고모의 자글자글한 눈가가 촉촉이 젖어들자, 그제야 아버지도 무릎으로 바닥을 닥닥 닦으며 빈소 바닥 곳곳을 누볐다. 사라져버린 고모의 중요한 물건을 찾기 위해.

엄마부터 아버지, 고모까지 네발로 기기 시작한 세 명의 어른은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한 편으로는 화가 난 듯 보이기도 했다. 그래 봤자 팔뚝에 하얀 띠를 두른 채 이 난리통에 관심도 없다는 듯 핸드폰이나 만지고 있는 동생의 무표정에 비하면 그다지 괴이한 얼굴도 아니었다. 네 발로 빈소를 누비던 엄마는 혹시라도 숨겨진 씨씨티비가 있는 건 아닌지 알아보겠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슬리퍼를 신고 다급하게 달리는 그녀의 발소리가 이곳까지 오래도록 들려왔다.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나는 얼른 고훈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서 나가자. 우리는 소란스러워진 공간을 뒤로하고 신발을 갈아 신었다. 나는 잠그지도 않은 금고에 구겨 넣었던 재킷을 꺼내와 걸쳤다. 오른 주머니가 묵직해 재킷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 먼저 나가 있어. 나 얘기 좀 하고 갈게.”

고훈은 구멍이 송송 뚫린 여름 구두의 뒤축을 구겨 신고 있었다. 나는 그를 먼저 내보내곤 온종일 부의함 앞을 지킨 친척 오빠에게 다가섰다. 내내 휴대폰을 하느라 눈이 시뻘게진 모습이었다.

“내일 몇 시에 부의함 뜯는대요?”

“글쎄, 3시에 싹 정리할 것 같은데?”

“안에 보면 소프트웨어학과라고 적힌 봉투 있는데, 그건 제 거예요.”

오빠는 픽 웃더니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삼촌이 네 발로 기고, 지 엄마는 울고 있는데도 그는 시끌벅적한 접객실을 한 번 돌아볼 뿐, 도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

이미 지하철이 다 끊겨서 고훈은 자고 가야만 했다. 그게 왜 나와 함께여야 하는지 정당한 사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양손 가득 미련을 들고 온 그가 못내 반가워 몸에 열이 올랐다. 재킷을 잘 걸어두곤 그를 먼저 샤워실로 보냈다.

엄마는 그간 상갓집을 많이도 찾았다. 순 아줌마들이 보낸 금액이라 많진 않았지만. 아버지는 대학을 다니는 내내 볼링에 빠져 살았다. 몇 년을 함께 빠져 산 친구들치곤 금액이 영 적었지만. 어쨌든 오늘은 짜장면에 짬뽕, 아니지 탕수육에 팔보채도 먹을 수 있다. 거기에 학과 친구들이 부의한 금액도 있다. 40시간의 최저임금 알바비는 이미 훌쩍 넘기고도 남았다. 아, 맞다. 알바비. 나는 불현듯 카페 생각이 나서 얼른 카페 매니저에게 연락을 취했다.

 

매니저님, 저희 직영점이니까 조부상 조의금 따로 받을 수 있지 않나요? 저번에 게시판에 올라온 복리후생 글 보니까, 상 났을 때 십만 원 준다고 봤던 것 같은데… 알바생은 해당 사항 없는 건가요? 그리고 저 이번에 3일이나 빠졌는데, 주5일 못 채웠다고 주휴수당 빠지고 그러는 건 아니죠?

 

모텔방은 고요했다. 방안에서는 고훈의 몸을 때리고 밑으로 추락하는 물줄기 소리만이, 바깥 복도에서는 누군가가 뛰어다니는 소음이 울려댔다. 바닥을 따갑게 때리는 물줄기와 신발의 소리가 귓가에 이명처럼 내려앉았다. 귀에서 울리는 마찰음이 씨씨티비를 찾아 뛰쳐나가던 엄마의 발소리와 비슷했다. 나는 눈을 감고 차분히 신사임당을 떠올렸다. 환하게 웃고 있을 백 명의 신사임당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4학년 이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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