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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독립유공자, 이태로 선생지금의 군산을 있게 해준 민족정신을 찾아서
허예원 기자, 김만희 기자 | 승인 2021.10.07 |(541호)

 넓은 평야와 수송에 편리한 항구를 갖추고 있어 한반도의 곡창지대 역할을 하던 군산은 일제에 의해 쌀 수탈의 고난을 겪어야 했다. 이처럼 핍박받던 시기에 농민·노동자들과 뜻을 모아 투쟁하고 이를 글로써 알리고자 했던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신문기자와 노동운동가로 활동한 이태로 선생이다. 이번 문화에서는 민족을 위해 헌신한 이태로 선생의 생애와 당대의 시대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사회·노동운동가 이태로 선생]

▲ 이태로 선생 / 출처 : 오마이뉴스

 먼저 사회·노동운동가로서의 이태로 선생을 소개하겠다. 1899년 군산(舊 옥구 지역)에서 출생한 이태로 선생은 1925년에 △전북 청년 연맹을 결성하고 집행 위원으로 활동했다. 1927년 결성된 △항일 비밀 결사 조선공산당 전북위원회에서 옥구 지역 책임자를 맡아 대중의 노동 의식을 함양시키고 민족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힘썼으며, 같은 해에 △군산노동연맹과 옥구 청년동맹 창립준비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8년 3월, 군산노동연맹 집행위원회에서 서무·재정 담당으로 선출되어 활동자금 모금 및 집행을 담당하였으며, △고려 공산청년회에도 가입하는 등 다양한 사회운동을 펼쳤다. 그러던 중 1928년, 치안유지법을 이유로 경찰에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이태로 선생은 출소 후 고문 후유증으로 1932년 순국하였으며, 2005년엔 생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건국 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옥구농민항일항쟁]

▲ 옥구농민항일항쟁 기념비 / 출처 : 매거진군산 공식 블로그

 다음으로 이태로 선생이 소작쟁의 자문 등의 역할로 참여한 옥구농민항일항쟁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는 1927년 옥구 서수면의 이엽사 농장에서 일어났는데, 이엽사의 일본인 지주는 무려 수확량의 75%를 소작료로 요구했고 이에 소작농들이 항의하면서 항쟁이 시작되었다. 수백 명의 조합원은 행진하며 소작료를 인하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인 관리인이 농민들의 요구사항을 거절하자 농민들은 소작료 납부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서수 주재소의 일본 경찰은 농민조합장 장태성을 검거했고, 지도자의 검거에 분노한 소작농 500여 명은 임피주재소와 서수주재소를 습격해 검거된 조합 간부를 석방시키며 투쟁하였다. 하지만 농민조합 간부들은 다시 검거되었고, 이에 농장 소작인 외에 군산 지역 노동자·학생들과 합세해 군산 경찰서 체포된 주요 인사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 무력 탄압으로 소작 쟁의에 참여한 80여 명이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옥구농민항쟁은 조선인 소작농이 일본인 지주의 혹독한 착취와 폭압에 직접 맞서 적극적으로 투쟁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는 항일독립운동이다. 옥구농민항일항쟁기념비는 치열했던 군산 농민들의 쟁의를 기억하고 옥구농민항쟁에 참여했던 모든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비석으로, 현재 임피중학교에서 만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소작쟁의에 참여한 농민들의 넋을 기리고 항일 운동 정신을 이어가기 위해 옥구농민항일항쟁기념사업회의 주최로 매년 11월 5일, 임피중학교 내에서 기념행사를 진행한다. 또한, 군산 지역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태극기 및 무궁화 그리기’ 공모전을 개최하고 있다.

[언론인 이태로 선생]

▲ 근대역사박물관 이태로 선생 신문 기사 / 출처 : 군산시 공식 블로그

 마지막으로 이태로 선생의 언론인으로서 활동과 당대의 언론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이태로 선생은 △<조선일보> <내외일보> 군산총국장 및 전북기자단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26년 7월, △조선문(한글) 신문잡지 군산기자단 발기회 때는 선언 규약 의안을 작성하였고, 창립총회에서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신문배달부 동맹을 조직하며 사회운동을 펼쳤으며, 1928년에는 옥구농민항일항쟁 공판을 취재·보도해 사회에 기여한 바 있다. 당시에는 높은 문맹률과 실업률로 신문의 역할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았다. 또한, 조선총독부에 의한 검열과 탄압으로 일제에 관한 기사를 제한적으로 쓰지 못했고 구독료 수입과 광고 수입도 얻지 못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이태로 선생은 우리 민족을 움직이기 위해 여러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며 일제에 대항하였다. 이 같은 공로를 기리고자 근대역사박물관에는 이태로 선생의 사진과 그의 행적이 실린 신문기사가 전시되어 있다. 관련 전시는 박물관 2층 독립영웅관에 위치해 있으니 참고 바란다.

▲ 이태로 선생 수형기록 / 출처 : 매거진군산

 이처럼 이태로 선생은 민족운동가이자 신문기자로서 군산의 독립운동에 많은 기여를 했다. 군산 지역에는 이태로 선생뿐만 아니라 △이준영 선생 △채세윤 선생 △홍천경 선생 등 다양한 독립운동가가 민족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힘썼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는 말이 있다. 더 발전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이해하는 과정이 반드시 따라와야 한다는 뜻이다. 이번 문화를 통해 군산에서 민족을 위해 힘쓴 이태로 선생을 알게 되었으니, 우리 역사에 좀 더 관심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인물들을 더 알고 싶다면 우리 지역의 △근대역사박물관 △옛군산세관 등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들을 방문해보는 것도 좋다. 이번 문화를 통해 ‘이태로’라는 독립운동가를 오래 기억할 수 있길 바란다.

▲ 이태로 선생 묘지 / 출처 : 시사더타임즈

허예원 기자, 김만희 기자  heryewon0203@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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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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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고장난벽시 2021-10-10 19:07:24

    처음 들어보는 분인데 알기 쉽게 써주셔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어요~!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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