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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대상 수상작 (소설)멜버른에는 오아시스가 있나요
황주영 기자 | 승인 2021.12.06 |(0호)

멜버른에는 오아시스가 있나요

 아빠는 기타를 안고 엉엉 울었다. 기타는 시체처럼 바닥에 반듯하게 뉘여 있었다. 깜빡 잠이 들었던 동생이 방에서 나와 영문도 모른 채 울음을 터뜨렸다. 좁은 방안에 둘의 울음소리가 사방으로 부딪혀 튕겨 나갔다.

기타는 원래 우리집 거실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 텔레비전 위에 걸려있었다. 가족 중 그 누구도 기타를 칠 줄 몰랐지만 말이다. 기타의 아랫부분에는 알아볼 수 없는 낙서가 있었다. 아빠는 그것이 오아시스라는, 지금은 해체한 록그룹 멤버 네 명의 사인이라고 했다.

-그냥 기타라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격이 떨어지겠지만 이 사인만 있다면 그 반대라고!

그들은 성격이 좋지 않아 사인을 정성스럽게 해주지 않고 떠나기 일쑤인 녀석들이랬다. 해체하는 바람에 이제는 넷이 공연을 할 일도 없었다. 나는 유투브로 그들의 공연영상을 찾아보았지만 좋지 않은 화질 탓에 번번이 끝까지 보기를 그만두었다. 아빠는 내가 보고 있는 영상을 어깨너머로 보더니 “저기에서 소리 지르고 있는 코쟁이들이 다 내 돈줄이란다.”하곤 흐흐 웃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동창 녀석이 더 이상 음악을 하지 않겠다며 아끼는 기타를 팔겠다고 했고 아빠의 중학교 동창 단톡방에는 작은 경매가 붙었다. 아빠는 ‘오아시스’가 누구인지도 몰랐지만 다른 친구들이 달려드니 왜인지 모를 마음에 60만원을 불렀고 그렇게 낙찰됐다. 나는 뭔가 이상한 것 같다고 했지만 아빠는 친구를 믿고, 본인의 감을 믿는다며 배송 중 기타가 깨질까 손수 동창이 있는 곳까지 가서 기타를 얻어왔다. 록스타들의 기타가 얼마에 팔렸는지에 대한 영어 기사를 번역기로 돌려가며 아빠는 뿌듯하게 웃었다.

아빠는 오늘 아침 텔레비전을 등지고 앉아 마른행주로 기타를 구석구석 닦았다. 몸체는 금방 닦았지만 어려운 것은 기타 목이었다. 행주는 기타 목과 현 사이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아빠는 휴지를 덧대어 닦아보기도 했지만 석연치 않았는지 더 얇은 행주를 찾아댔다. 집에 있는 모든 서랍이 활짝 열렸다. 집 안에 있는 모든 가구가 아빠의 호들갑에 놀랐다는 듯이 말이다. 구석 어딘가에 숨어있던 잡동사니는 거실에 온통 널브러졌다. 아빠는 언제 마지막으로 열었는지 모를 싱크대 왼쪽 맨 끝의 찬장에서 부직포 행주를 꺼내왔다. 그것을 기타 목에 넣는 순간 쨍하는 소리가 났다. 아빠는 손목을 부여잡고 커다랗게 뜬 눈으로 기타를 내려다보았다. 두 번째로 얇은 기타줄이 끊겨 있었다. 아빠는 헉, 하고 숨을 들이마신 채로 한동안 있다가 혼자 괜찮을 거라고 중얼거렸다. 하자가 있어도 빈티지 옷이 유행이라던데, 사용할 기타도 아니고 말이지 아빠는 계속 누군가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런 기타가 사실 가짜 사인이 그어진 기타였던 것이다.

문제는 항상 줄이었다. 아빠는 그런 사람이었다. 대형마트에 가서 계산 줄을 서도 가장 안 빠지는 곳을 골라 섰고, 화장실에 들어가서도 가장 늦게 나왔으며, 문제를 일으킨 교수의 조교 일을 했고, 회사에서도 곧 잘릴 과장의 편에 섰다. 아빠는 그럴 때마다 자신이 사람 복이 없다며 한탄했지만 이쯤 되니 아빠가 문제처럼 보였다.

엄마는 아빠에게 동아줄 같았을 것이다. 엄마가 처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아빠를 소개해준 것은 큰 의미가 있던 게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넷이 식사를 한 날, 집에 돌아온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는 아빠 흉을 보기 시작했다. 남자가 머리를 저렇게 꼬불거리게 볶았다니? 키가 좀 작은 것 같다. 돈벌이도 시원치 않은 것 같구나. 장남이면 여자가 시집가서 너무 고생한다. 엄마는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결혼을 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아빠가 딱히 싫지도 않았고, 자신의 나이도 어리지 않았으니 결혼하기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결혼은 타이밍”이니까 말이다.

엄마는 사회학이라는 전공을 살려서 취직한 드문 케이스였다. 경제사회학 연구소에 들어가서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냈다. 아빠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동안 엄마는 새로운 연구 자리를 얻고 팀 대표로 상을 받았다. 아마 엄마는 아빠 인생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일 것이다.

 

동생과 나는 화요일 밤이면 컴퓨터 앞에 앉아 엄마의 영상통화를 기다렸다. 엄마가 전화를 하는 방식은 꼭 미뤄둔 숙제를 하는 것 같았다. 월요일은 너무 지쳐서 전화하지 못하겠고,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약속이 있는 날이 많다고 했다. 엄마는 자주 지각을 했지만 전화를 일주일에 한 번도 하지 않는 날은 없었다. 오 분도 채 안 되게 전화를 하더라도 꼭 화요일마다 전화했다. 엄마가 있는 멜버른은 우리보다 한 시간 늦었다. 멜버른은 호주에 있는 도시였다. 멜버른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국의 느낌은 호주의 어감과는 달랐다. 나는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엄마는 호주에 있어요, 가 아닌 멜버른에 있어요, 라고 말했다.

어색한 사람과 말을 트기 위해서 날씨 얘기를 하곤 하지만 엄마와 우리는 매번 날씨 얘기로 말문을 열었다. 멜버른은 한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지 않았고 한여름에도 30도를 넘지 않았다. 멜버른의 5월은 한국의 간절기 같아서 오늘도 비가 내렸다 그치기를 반복한다고 했다. 그리고서 뒤늦게 우리에게 갑자기 웬 반팔이니? 하고 물었다. 엄마가 호주에 간 지 3년째였기 때문에 우리들의 대화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같았을 것이다.

“저번 주까지는 카디건 정도는 걸쳤어야 했는데 이제는 아무리 벗어도 더워.”

“아빠한테 빨래를 자주 돌리라고 말해야겠네.”

화요일에 전화하는 걸 알면서도 아빠는 화요일 밤에 약속을 잡곤 했다. 둘이 따로 연락은 하겠지만 화요일 밤은 가족 넷이 한 번에 모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엄마는 하고 싶은 연구를 계속하며 이만큼의 돈을 벌기는 어렵다며 호주로 향했다. 나는 엄마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호주로 떠나는 엄마 앞에서 서운한 티를 내지 않는 것은 나의 최대의 호의였다. 엄마는 자주 말했다. 홧김에 살지 말렴. 나는 엄마가 인생에서 한 ‘홧김의 실수’중에 내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저 엄마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함께 공항에 바래다주고 오는 길에 동생은 조수석에 앉아 빽빽 울어댔다. 아빠는 한 손으로는 핸들을, 한 손으로는 동생을 쓰다듬으며 열심히 달랬다. 요즘은 국제전화도 공짜고, 영상통화도 되고, 엄마도 반년에 한 번씩은 들어온다잖니. 예전 같으면 편지 주고받는 데 한 달이 걸렸어.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걸 감사하게 여기렴. 동생은 그제야 울음을 멎어갔다.

호주로 출국하는 날, 긴장한 엄마는 아침부터 모두를 닦달하며 깨웠다. 엄마와 아빠, 동생은 탑승 수속까지 남은 시간을 망연하게 보다가 기다란 좌석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가방이나 지킬까 했지만 동생도 들어갈 만한 크기의 커다란 캐리어를 들고 갈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28인치 캐리어를 끌고 뒤뚱뒤뚱 걸어가는 도둑을 상상하며 자리를 옮겼다. 공항은 아주 크고 복잡한 백화점처럼 느껴졌다. 우체국도 있었고 꽃집도 있었다. 공항에서 편지 봉투를 사고 꽃을 사는 건 정말 낭만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구색 맞추기일 뿐이었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하는 생각에 장미 한 송이를 샀다.

-이걸 가지고 비행기 탈 수가 있나?

엄마는 꽃을 받자마자 말했고 공항에 꽃집이 있는 이유는 낭만 때문이 아니라 실리 때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

 

방과 후에는 소미와 함께 공원을 걸었다. 날씨가 갑자기 더워지기 시작하자 나무 밑에는 이름 모를 벌레들로 가득했다. 벤치에 앉아있다 보면 알 수 없는 노란 벌레가 내 팔을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손바닥으로 내리쳐 죽이는 나를 옆에 두고 소미는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벌레를 날려 보냈다. 후 후 후 후 후 후 후 후, 연속해서 불다 보면 소미는 어지러운지 잠깐 이마를 짚었다.

“우리 언니는 외국어 고등학교에 갔어.”

“사촌 오빠가 벌써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대.”

“살이 더 쪘어.”

“앞집 애보다 성적이 떨어졌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우리 담임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들 덕에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성공한다고 했어.”

소미와 나는 최근의 고민을 주욱 늘어놓다가 고민 없는 대안을 내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렇기 때문에 소미와 나는 서로의 비밀을 가장 많이 알았다. 사실 옆 반의 누구와 사귀었다는 것, 시험 시간에 컨닝을 해본 적이 있다거나 하는 비밀들은 그대로 서로의 약점이 되었다. 그것은 이 관계가 무서운 이유이기도 했다. 새로운 곳에 가족여행을 가거나 좋아하는 아이돌의 콘서트를 보거나 하는 즐거운 얘기를 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불행에 기인한 것이었다. 소미와 내가 깊은 관계인지 얄팍한 관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소미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모두가 오차 없이 자신의 몫을 다 하며 살아갔다면 너무나 끔찍했을 것이다.

서로의 불행을 다 쏟아낸 직후에는 잠시 말이 없었다. 우리는 잠깐 각자의 휴대폰을 만졌다. 내가 휴대폰을 보다 킥킥, 하고 웃으면 소미는 고개를 쭉 빼며 뭔데 그래? 하고 물었고 소미가 너무 귀엽지 않느냐며 이따금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소미는 독서실로 향했고 나는 방과 후 학교가 끝나는 동생을 데리러 갔다.

나는 정작 내가 정말 털어놓고 싶었던 고민은 말하지 못했다. 항상 무기력하게 엄마와 아빠와 소미와 선생님의 선택에서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꽤나 성실한 사람이었지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너무나 쉽게 누군가의 의견에 동화됐다. 사실은 내가 선택하는 것보다 누군가의 선택이 편했다. 하지만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불쑥불쑥 튀어올랐다.

 

“제뉴어리 페뷰어리 마치, 에이프릴 메이, 준, 줄라이, 어거스트, 셉텐버, 악토버 노벰버 디셈버, 악토버 노벰버 디셈버.”

동생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영어로 노래를 불렀다. 좌식탁자에 펼쳐놓은 종이에는 삼 열에, 사 행으로 이루어진 열두 칸의 표가 그려져 있었다. 흐릿한 흑백 잉크로 월별 계절 그림이 인쇄되어 있었다. 하얀 눈송이는 거의 지워져 마치 12월의 겨울은 온통 눈밭인 것처럼 새하얬다. 이렇게 날씨가 정확한 기준으로 바뀌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을 해보다가 멜버른은 어떻게 월을 이미지로 구분하는지 궁금했다. 크리스마스도 반팔을 입고 보내고 부활절에도 반팔에 카디건 정도를 걸치는 그 도시가 말이다.

제뉴어리 페뷰어리 마치, 에이프릴 메이, 준, 줄라이, 어거스트, 셉텐버, 악토버 노벰버 디셈버, 악토버 노벰버 디셈버.

“왜 계속 부르는 거야?”

“호주에 갔을 때 영어를 잘하고 싶어.”

“그런 노래는 호주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

“영어 선생님이 도움이 될 거래.”

“우리나라에서 살 때 1월에서 12월까지 말할 일이 있던?”

동생은 내 말을 듣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단지 동생의 노래를 멈추게 하고 싶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소파에 드러누워 있고 싶었지만 동생은 다른 책자를 펼치더니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하우 알 유? 아임 파인 땡큐. 앤 유? 하우 올 더 유? 아임 나인 열스 올드. 마이 네임 이즈 승현 킴.”

 

아빠는 컴퓨터에 이리저리 꺾인 그래프를 띄워놓고 낮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프는 절대 친해질 수 있는 그림이 아니었다. 파도처럼 예쁜 곡선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조금은 더 좋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들은 항상 날이 서 있었다. 높은 곳에도 낮은 곳에도 좁고 날카로운 모서리가 만들어졌다. 격동적이지만 아주 얇은 줄에 아빠는 간신히 매달려있을 것이다. 저 줄은 몇 인분의 것일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줄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축 늘어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장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지는 걸까.

바닥에는 여전히 줄 하나를 잃은 기타가 일인 시위를 하듯 뉘어져 있었다. 먼지는 벌써 기타 전체를 얇게 덮은 채였다. 기타는 가장 굵은 줄부터 미-라-레-솔-시-미 소리가 난다고 했다. 하지만 지저분한 낙서가 새겨진 우리집 기타는 이미 ‘시’를 잃어버렸다. 손가락으로 다섯 개의 줄을 하나씩 퉁겨보았다. 그렇다고 그것들이 정확히 미-라-레-솔-미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었다. 어딘가 늘어지고 어긋난 듯한 소리였다.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표준에 맞지 않았다. ‘시’줄은 끊기기 전에 어떤 음정을 갖고 있었을까, 끊길 때 울려 퍼진 쨍하는 소리는 무슨 음에 가장 가까웠을까 생각했다.

아빠는 중학교 동창에게 연락을 했지만 친구는 그저 “그럼 나도 속고 샀던 거네! 아이고 미안하다, 어떡하냐.”하고 말했다. 아빠는 본인보다 돈 없이 사는 친구한테 돈 때문에 화내고 싶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위로를 조금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연락이 오래도록 끊긴 동창들이 SNS를 통해 만난 얄팍한 사이였다. 그런데도 그 동창을 덥석 믿은 아빠가 우스웠다. 그냥 중고나라에 싸게 올려버릴까 생각하다가도 귀찮아진 아빠는 기타를 가만히 두었다. 아무도 기타를 세우거나 다른 장소에 옮겨놓지 않아 동선을 방해하지 않는 구석으로 기타는 점점 밀려났다. 가끔 발에 걸릴 때마다 자신이 여기있다는 것을 알리듯 딩, 하는 소리를 내곤 했다. 아빠는 그것을 보곤 웃었다.

“이빨 빠진 호랑이가 안 무섭듯 줄 끊어진 기타는 더 조용한 것 같아.”

기타가 여섯 개의 줄을 모두 가진 채 벽에 걸려있을 때가 가장 조용했다는 것을 잊은 듯한 말이었다.

 

어느 날 동생이 목욕을 하고서 수건이 없다며 뛰쳐나오다가 거실에서 미끄러졌다. 하필이면 열려있던 서랍장에 머리가 찍혔고 동생은 엉엉 울기 시작했다. 행주를 찾을 때 열어두었던 서랍장을 제때 닫지 않은 탓이었다. 부엌은 내가 정리를 했지만 왠지 거실까지 청소하기에는 억울했다. 누가 이기나 보자는 심정으로 내버려 두고 있었는데 승자는 없고 오로지 이마가 찢긴 사람만 생겼다. 동생의 왼쪽 이마는 움푹 들어갔고 턱 쪽으로 피가 천천히 흘렀다. 아빠한테 전화하자 택시를 집 앞으로 부를 테니 내려가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급한 대로 아빠가 꺼내두었던 얇은 행주로 동생의 이마를 누르며 1층으로 내려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동생을 흘끔거렸고 아주머니나 경비원이 이따금 어머, 하며 괜찮냐고 물었다. 그러곤 그들은 뭘 해줘야할지 모르겠다는 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택시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고 아빠는 그럴 리가 없다며 기다려보라고 말했다. 아빠는 승차 거부가 떴었네, 하며 다시 불러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전화를 끊고 대로변으로 나가 팔을 휘적거리며 택시를 잡았다. 아빠만 믿고 있다가는 하루종일 우는 동생을 두고 서 있을 터였다.

아빠는 이마에 거즈로 만든 반창고를 붙인 동생을 보자마자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팔짱을 낀 채 아빠를 쳐다보았지만 딱히 내게 미안한 것은 없어 보였다.

“우리 아들, 어디 가고 싶은 곳 없어?”

“나는 호주.”

“그럼 캥거루가 있는 동물원에 가면 되겠다.”

동생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호주와 한국 동물원과 캥거루가 커다란 연관이 있는 건가 싶었지만 어쨌건 둘은 만족한 것 같았다.

 

*

 

엄마는 카메라 너머의 반창고 붙인 동생을 보고 놀라며 어쩌다가 다쳤냐고 물었다. 동생은 ‘열려있는 서랍장에 이마를 찍혔다’고 말하지 않고 ‘몸을 닦지 않은 채 뛰어나오다가’라고 말했다. 엄마는 무언가를 말하려다가 삼켰다. 동생은 자신이 학교에 있었던 일을 쫑알쫑알 얘기하기 시작했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말도 했다. 화면 속 엄마는 둔하게 움직였다. 눈을 반쯤 뜬 채로 멈춰있지만 목소리는 계속해서 나온다거나, 갑자기 화면이 조각나 엄마가 있는 세계에 문제가 생긴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엄마는 자신의 방을 보여주지 않았는데 화면 뒤로 살짝 비치는 화면을 보면 너저분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옷가지들이 의자에 여러 겹 쌓여있었고 침대에는 두꺼운 책이나 용지들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으며, 바닥에는 과자 봉지 같은 것들이 굴러다녔다. 엄마 뒤의 탁상에 놓인 사진은 누구의 사진일까 생각하는데 대뜸 내 이름이 불렸다. 내가 놀라며 화면의 엄마를 쳐다보자 엄마가 말했다.

“I‘ll call you tomorrow at 8 o’clock in Korea time, okay?”

쉬운 문장이었지만 엄마가 빠르고 좋은 발음으로 말하는 바람에 잠깐 생각한 뒤에야 알겠다고 대답했다. 동생은 엄마가 뭐라고 한 거냐며 물었다. 비밀이라고 말하자 동생은 다시 자신이 아는 모든 영어 문장들을 내뱉었다. 엄마는 내게 말했던 것과는 다르게 천천히, 조금은 각진 발음으로 동생과 영어로 대화했다.

다음 날 아침, 엄마는 올해 겨울에 호주로 오라고 말했다. 본인도 조금 걱정이 되긴 하지만, 멜버른은 비백인들이 많은 동네이기 때문에 내가 와도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비백인이라는 말은 어쩐지 나를 겁먹게 만들었다. 남성과 비남성으로 성별이 불리지 않는 것과 같았다. 백인이 아니면 비백인으로 나뉘는 국가라는 국가라면, 나는 평생 그속에서 백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하는 걸까. 비백인 안에도 아시아인, 라틴, 흑인이 있는데 왜 그들은 백인이 아닌 사람들로 불리는 걸까.

“네 선택이지, 아빠와 있으며 한국에서 학교생활을 해도 괜찮아.”

엄마는 그렇게 말하곤 출근을 해야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소미는 최근 악몽을 꾼다고 했다. 예전에는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이 대학을 결정했다면, 요즘에는 중학교 2학년 성적이 대학을 결정한다는 글을 본 이후였다. 소미는 성적에 맞춰 낮은 등수로 높은 고등학교에 들어갈지, 높은 등수로 낮은 고등학교에 들어갈지 고민했다. 소미는 왜 하필 비평준화 지역에서 살아가지고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곧 내게 동의를 구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는 나보다 성적이 좋았다. 월등히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나보다 나은 구석이 있기 때문에 나를 곁에 두는 거라고 추측했다. 나는 소미의 그런 생각을 굳이 망칠 이유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소미의 불행을 맞장구쳐주면서 나의 더 큰 불행을 말하곤 했다. 그렇다고 소미가 나의 불행에서 안심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불행을 포함한 그 어떤 면에서도 소미는 나를 이기길 바랐다. 작은 일도 아주 크게 말했다. 나는 호주 유학을 갈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삼켰다.

“주말에 동물원을 가.”

공부해야 하는데, 나는 뒤늦게 덧붙였다. 소미는 그것 참 안됐다고 대꾸했다. 함께 독서실에 가서 고등학교 시험 준비 겸 기말고사 준비를 하자고 했다. 나는 이미 마음이 붕 떠 있었지만 함께 불안을 느끼려고 노력하며 독서실로 향했다.

 

사과의 검게 파인 부분을 칼로 깊게 도려냈다. 오늘 먹지 않으면 검은 것은 점점 퍼져 사과 하나를 잡아먹을 것이었다. 껍질을 벗겨 속을 드러낸 사과는 크레이터가 선명한 달 같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아빠와 동생은 이쑤시개로 사과를 집어먹었다. 정작 나는 사과를 먹지 못했다. 만약 내가 깨끗하게 도려낸 것이 아닐까 봐서였다. 눈에 보이는 것만 도려낸다고 그 거뭇함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거라는 의심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해외에 나가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아빠가 회사를 옮기기 전이었다. 나는 아빠가 엄마에게 자신의 직장에 대해 한탄하는 것을 몰래 엿들었다. 자신을 품어주던 상사가 회사에서 잘리고서 아빠는 팀 내에서 따돌림을 당했다. 상사와 아빠 둘이 붙어 사내 분위기를 망친다는 소문이 돌았다. 차라리 업무를 많이 떠넘기고 밥 먹을 새도 없이 바빴다면 나았을 것이라고 아빠는 말했다. 어떠한 업무도 연락도 아빠에게는 오지 않았다. 워드의 텅 빈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만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퇴근하길 반복했다. 엄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회사를 옮기라고 말했다. 수입이 바뀌어도 고정되는 지출은 변함이 없었기 때문에 아빠는 자신을 받아주는 회사에 바로 취직했다. 연봉 차이가 확연히 컸지만 이미 나이가 찬, 적당한 사유 없이 사직서를 낸 아빠를 고용하는 회사는 드물었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와 아빠는 항상 내게 동생을 잘 대해주라고 말했다. 나는 유복할 때 유년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해외여행도 많이 다니고, 생일마다 좋은 선물을 받고, 발레나 주산, 피아노 같은 여러 학원에 다닐 수 있었다고, 동생은 너만큼의 것을 누리지 못했으니 네가 잘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서른 명의 한국인이 들어있는 버스를 타고 유럽 5개국을 보름 만에 도는 것도, 전자사전이나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바이올린-덕분에 나는 그 해에 바이올린을 새로 배워야 했다-을 선물 받는 것도, 여러 학원들을 전전하는 것도 좋지 않았다.

텔레비전에서는 변기보다 세균이 많은 휴대폰, 리모컨에 대해서 방송되고 있었다. ‘변기보다 무려 10배나 더러운 스마트폰’이라는 자막이 떴고, 그 아래로 패널들이 과장스럽게 표정을 지었다. 어느 연구소 소장이 화면을 향해 비스듬히 앉아 사람들이 놓치지만 자주 청소해야 하는 물건에 대해 말했다.

“세상 살기에는 알아야 할 게 너무 많구만.”

아빠는 투덜거렸다. 변기는 그럼 스마트폰보다 10배 깨끗한 것일 텐데,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입은 잠옷에도, 동생의 귓바퀴도, 아빠가 오늘 사용한 면도기에도, 바닥에 깔린 러그에도, 기대어 앉아있는 소파에도. 무수한 물건들에 대해 생각하자 아득해졌다. 나는 무심코 사과 한 조각을 집었다.

 

소미는 비가 오니까 떡볶이를 먹자고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각자의 우산을 쓰고 우산 크기만큼의 거리를 유지한 채 분식점으로 향했다. 먹는 방식은 언제나 같았다. 떡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묵을 골라 먹었다. 소미는 나와 함께 어묵을 해치운 후, 내가 그만 먹으면 남은 떡을 먹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소미가 더 떡볶이를 좋아하니까 하고 넘겼던 일이지만 오늘은 달랐다. 숙제를 해놓고 가져오지 않아 혼나기도 했고, 하필 선도부 앞에서 틴트를 바르다가 걸리기도 했으며, 맛없는 급식이 나와 배부른 식사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포크를 내려놓자 소미는 남은 떡들을 먹기 시작했다.

“오늘은 밥도 비벼 먹자.”

“나 이거 다 먹으면 배부를 것 같은데?”

소미는 떡을 집어 먹으며 대답했다.

“나 올해 말에 떠날 수도 있어.”

“어디로?”

“해외야.”

“멜버른.”

“호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미는 떡을 입에 넣다 말고 입 주변에 벌건 국물을 묻힌 채 나를 쳐다보았다. 며칠 동안 갈지 말지 고민했던 것을 갑자기 결정해버린 탓에 나도 조금 놀라있었다. 소미는 떡을 조금 남겼다. 분식점 문이 열리고 닫히는 찰나에 바깥의 빗소리가 들어왔다. 평소에는 오뎅 국물을 마시며 조금 더 이야기하곤 했지만 소미는 오늘은 독서실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는 집 앞에 있는 정자에 앉았다. 지붕으로 덮여있었지만 축축했다. 소미에 대한 마음도 비에 젖었는지 무거워진 것 같았다. 나는 단지 내가 떠날 곳이 있는 사람이니까 잘해달라는 의미로 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소미는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보였다. 영어를 쓰는, 오페라 하우스가 있는 나라로 내가 떠나는 것이 불만인 것 같았다. 나는 비백인이 아닌 백인들을 자연스레 떠올렸을 소미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을 덜기위해 화났냐는 메시지를 보낼 뿐이었다. 단지 엄마가 있어서 멜버른을 고민하는 것뿐이고 한국에 남아있으려는 고민은 소미 때문이라는 말이 속에서 맴돌았다.

소미는 낯을 많이 가리는 내게 먼저 다가왔다. 나는 따돌림을 당하지는 않았지만 쉬는 시간에 혼자 있고 급식실에 혼자 다니는 그런 외톨이였다. 소미는 우리반에서 가장 큰 여자애들 무리에 섞여있던 애였다. 하지만 어느날 소미는 그 무리에서 나왔고 바로 내게 말을 걸었다. 그 무리는 소미를 욕하며 덩달아 나에 대해 쑥덕거렸지만 나는 소미가 내게 도움을 청함과 동시에 외롭지 않게 도와줬다고 생각했다. 소미는 내 첫 친구였다. 친구이기 때문에 소미가 놀러가자고 하면 놀러가고, 부르면 갔으며, 항상 함께 있었다. 친구 사이라면 원래 그렇게 하는 줄 알았고, 나는 내가 소심하기 때문에 그런 위치여도 괜찮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

 

아빠와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쌌다. 내가 어릴 적부터 썼던 터라 도시락통에 프린팅된 그림은 조금씩 지워져 있었다. 옛날에 유행했던 애니메이션 주인공의 눈동자는 칠이 벗겨져 흰색 빗금이 아무렇게나 쳐져 있었고, ‘LUNCH’의 U와 C가 지워져 ‘L JN H’로 보였다. 우리는 마주 보고 앉았다. 식탁에는 수북이 쌓인 유부와 볶음밥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피곤한 기색을 누구도 숨기려 하지 않았다. 하품이 나오면 하품을 하고 한숨이 나오면 한숨을 쉬며 손을 움직였다. 유부의 입을 벌리고 볶음밥을 꾹꾹 눌러 담았다. 잠깐 한눈을 팔거나 욕심을 내면 유부는 쉽게 찢어졌다. 그것들은 모두 서로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경기도 외곽에 있는 동물원이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 우리는 줄을 오래 서야 했다. 아빠는 자신이 줄을 서겠다며 나와 동생에게 벤치에 앉아있으라고 말했다. 벤치에는 이미 단체로 온 사람들의 차지였다. 우리는 내 허벅지까지 오는 높이의 화분에 걸터앉았다. 도시락 통과 얼음물 따위가 든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빠가 서 있는 줄을 쳐다보았다. 줄이 가장 짧은 매표소에 섰는데 가장 늦게 줄어들었다. 다른 매표소는 한 팀이 우르르 빠지는 데에 비해 아빠가 선 곳은 한 명, 두 명씩만 빠졌다. 아빠의 줄에 함께 서 있던 사람들은 옆의 매표소로 옮겼고, 단체로 온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매표소에 서 있다가 가장 줄이 짧아진 곳으로 모이곤 했다. 아빠는 움직이지 않았다.

동물원에 오기 싫었던 이유는 무리에 갇힌 동물들을 봐야했기 때문이었다. 등을 돌리고 있는 침팬지나 잔뜩 화가 난 염소, 힘껏 날다가 낮은 찬장에 부딪히는 새들을 보고 있다면 쓸쓸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야하는, 인기가 없는 소나 돼지 같은 동물들은 들어오지도 못하는, 탈출하자마자 인간을 위협한다며 사살당하는, 낯선 공간이지만 어쩌면 매일 피부로 느끼고 있었을 기분이 들었다.

동생은 막상 동물원에 오니 캥거루는 잊은 듯했다. 동물원 여기저기에 비치된 놀이기구를 타고 싶어 했다. 커다란 동물 우리를 감당하기에도 벅찬 동물원은 체구가 작은 아이들을 위한 놀이기구밖에 들이지 못했다. 동생이 바이킹을 세 번째 탔다. 동생은 처음엔 가운데에 앉았다가 다시 탈 때마다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앉았다. 아빠와 나는 도시락을 열어 유부초밥과 함께 싸 온 과일을 먹었다.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했지만 소미에게는 연락이 없었다. 어젯밤에 집에 잘 들어갔냐는 메시지도, 오늘 보낸 동물원이 재미없다는 메세지도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텅 빈 메신저를 반복해서 들여다보니 어쩐지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엄마에게 ‘올해 갈게’라고 보냈다.

동물원 지도에는 ‘사파리를 느끼고 싶은 활기찬 사람들을 위한 코스’, ‘귀여운 동물들을 좋아하는 소녀 감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코스’, ‘여유 있게 둘러보고 싶은 느긋한 사람들을 위한 코스’ 따위가 적혀있었고 우리는 ‘그 무엇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꼼꼼한 사람들을 위한 코스’를 따라서 걸었다. 동생은 그 나이 또래와는 다르게 먹이 주기 체험이나 말타기 체험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원숭이가 철장과 모조 나무를 넘나드는 것을 보다가도 놀이기구를 찾아댔다.

“그럴 거면 놀이동산에 가자고 했어야지.”

“우리는 지금 홀수잖니.”

동생 대신 아빠가 대답했다. 동생은 본인이 그렇게 생각했던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테이블과 의자가 붙어있는 나무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아침에 싸 온 도시락을 펼쳤고 동생은 나무젓가락으로 열심히 집어 먹었다. 나와 아빠는 터진 유부초밥을 이미 많이 먹은 탓에 유부초밥 하나를 여러 번 베어 물며 아주 천천히 식사를 이어나갔다. 동생이 갑자기 고개를 번쩍 들어 위를 가리켰다.

“나 저거 탈래!”

동생의 입에서 밥풀 몇 알이 튀어나왔다. 손가락 끝에는 레일 자전거가 있었다. 팬더 모양, 사자 모양, 토끼 모양 자전거가 줄줄이 레일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자전거는 모두 2인용이었기 때문에 내가 짐을 지키겠다고 했다.

둘이 자전거를 타러 간 사이에 전화가 왔다. 소미인가 싶어 재빠르게 휴대폰을 보았더니 엄마였다.

“전화되니?”

“응, 지금 동물원인데 아빠랑 승현이는 뭐 타러 갔어.”

“충분히 생각했어? 급하게 결정하지 않아도 돼.”

“정했어. 멜버른에 갈 거야.”

“멜버른이 아니라 멜번, 으로 발음해야지.”

엄마는 학교 공부보다 영어 공부를 좀 해야겠다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이라고 덧붙이며 가져와야 할 옷, 사는 동네의 주변 상권, 내가 갔으면 하는 학교에 대해 쏟아냈다. 그리곤 아빠한테는 자신이 말하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높은 식당 건물에 가려져 있던 해가 넘어와 내게 비쳤다. 자리를 옮기기에는 귀찮아 손을 이마에 갖다 대 빛을 막았다. 아이들의 소란 사이로 이따금 동물들의 소리가 넘어왔다. 새의 높은 울음소리와 어떤 동물인지 알 수 없는 낮은 울음이 불협화음을 이루었고, 그것들은 동물원 전체를 울리는 테마송에 묻혔다. 왜인지 조율이 맞추어지지 않은 채 줄마저 끊긴 기타가 떠올랐다.

“누나!”

동생의 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빠 혼자 열심히 페달을 밟고 있는지 아빠의 다리가 규칙적으로 들썩거렸다. 동생은 나를 향해 팔을 크게 흔들며 인사했다. 나는 햇빛을 가리고 있던 손을 떼어 그들에게 흔들어 보였다. 기다렸다는 듯 쏟아지는 빛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탄 자전거는 단선으로 이루어진 레일을 따라 꿋꿋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코뿔소 모양 자전거가 아빠와 동생의 자전거를 향해 바짝 쫓아왔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문예창작전공 4학년 강보민

황주영 기자  wndud8608@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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