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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황룡학술문학상 문학부문 우수상 (문학평론)채만식 소설의 두 가지 모험
황주영 기자 | 승인 2021.12.06 |(0호)

 

채만식 소설의 두 가지 모험

─ 『인형의 집을 나와서』, 『아름다운 새벽』을 중심으로

 

1. 식민지의 폭력성, 모험적 주체의 부재

2. 타자화된 인형의 모험 :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경우

3. 전근대와 제국의 욕망, 그리고 주체적 결단 : 『아름다운 새벽』의 경우

4. ‘주체 없는 모험’과 ‘겨우 결단하는 주체’, 혹은 채만식의 젠더의식

 

 

 

 

1. 식민지의 폭력성, 모험적 주체의 부재

 

때때로 개인의 욕망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의해 거세당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다. 물론 사회, 혹은 공동체가 정상적인 방향으로 운영되고 있다면 대타자의 욕망을 욕망하는 행위가 잘못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문제는 공동체의 논리가 정상성과 거리가 먼 상황이다. 예컨대 태평양전쟁 시기에 일본이 표방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념이 있다.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워 아시아 침략주의를 정당화했으며, 일본의 정치인은 과거 일본의 아시아 침략에 대해 “침략이 아니다, 침략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자학일 뿐이다, 역사에 무지한 것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에서 식민지 조선인의 욕망은 금기시되었고, 이념적 성향이 강했던 카프, 모더니즘 서사를 제외하고는 식민지 시대 작가들의 작품에는 주로 주인공의 모험 아닌 좌절의 순간이 다뤄졌다. 한마디로 식민지 조선은 돈키호테적 모험이 불가능한 땅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선인의 욕망이 금지되는 상황에서 채만식의 문학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채만식의 『탁류』, 『태평천하』, 『금의 정열』, 「냉동어」 등의 소설에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는 인물들이 존재한다. 자신을 억압하는 거대한 힘 앞에 좌절한 그들은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패배자의 길을 걷는데, 이것은 사실 채만식 문학이 보이는 하나의 경향성이기도 했다.

그런데 모험을 믿지 않았던 채만식에게 예외적인 두 작품이 있었고, 그것은 바로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아름다운 새벽』이다. 1933년, 자신의 첫 장편소설에서 여성의 모험을 시도했던 채만식은 식민지 말기인 1942년에 남성의 모험을 보여주기에 이른다.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아름다운 새벽』의 주인공은 모험을 시도하지 못하고 결국 좌절하는 패배자가 아닌 주어진 난관을 적극적으로 헤쳐나가는 도전자라는 점에서 모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던 채만식에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주체의 모험이 식민지 시대 채만식 소설의 처음과 끝에 위치한다는 사실은 우리가 채만식의 모험 서사,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아름다운 새벽』에 주목해야만 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

그래서 첫 번째로 논의할 『인형의 집을 나와서』는 “노라의 후일담”이라는 맥락 아래 주로 여성의 자아실현, 여성해방을 함께 관련지은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져 있다. 채만식의 여성의식과 관련해서는 작품에 묘사된 신여성(노라)과 구여성(옥순)을 비교하여 여성 중에서도 지식인에게 특히 외면받던 구여성의 삶을 조명한 논의와 여성 수난사의 맥락에서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노라와 『탁류』의 초봉을 함께 비교한 논의가 있으나, 채만식 소설 속 여성의 모험과 남성의 모험을 비교한 연구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두 번째로 논의할 『아름다운 새벽』은 채만식 소설 속 많은 인물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택 앞에 주저하고 도피하고 마는 인물이 등장하지만, 결말에 이르러 (남성) 주체가 눈앞의 문제를 직시하고 모험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특이성을 존재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행본이 전편만 간행된 관계로 완결되지 않았다는 오해를 줄곧 받아왔을뿐더러, 원본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친일문학적 담론이 확인되었기 때문에 그동안 본격적인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본 논문에서는 채만식이 처음으로 시도한 여성 모험 서사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식민지 말기에 쓰인 남성 모험 서사인 『아름다운 새벽』의 모험 양상을 분석하고자 한다. 그리고 모험을 믿지 않았던 채만식의 예외적인 두 작품,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아름다운 새벽』의 상반되는 결말을 통해 식민지 시대 채만식의 여성 의식을 살펴보는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2. 타자화된 인형의 모험 :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경우

 

채만식 최초의 장편 소설 『인형의 집을 나와서』는 1933년 5월 27일부터 11월 14일까지 『조선일보』에서 약 140회에 걸쳐 연재되었다. 총 14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은 입센의 『인형의 집』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이름을 『인형의 집을 나와서』라고 붙이고 쓴 의도만은 그래도 짐작하는 이가 많이(읽는 사람 가운데) 있으리라고 생각하여 왔었다”는 채만식의 소회를 확인하지 않더라도, 소설의 제목과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 및 전체적 줄거리가 『인형의 집』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입센의 『인형의 집』은 결말에 이르러 “기적을 통하여 진실한 결혼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한, 두 사람의 재결합은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기적은 부부간의 진정한 이해와 믿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기적은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키지 않고서 결코 일어날 수 없기에 투쟁과 혁명이 필연적이다. 때문에 『인형의 집을 나와서』는 『인형의 집』의 후일담인 동시에 집 나온 여성의 투쟁담이라고 볼 수 있다.

 

노라는 허둥지둥 계동 어귀까지 내려와서야 비로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는 들고 오던 옷가방을 길바닥에 털썩 내려놓고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죄었던 마음이 풀리니 전신의 맥이 일시에 누그러지는 것이다.

그는 오늘 밤 집을 나온 것을 옳고 그르고 간에 돌이켜 생각해볼 겨를도 없었다. 하나 갑자기 이렇게 외따로 늦은 밤거리에 나서 있음에 답답한 꿈을 꾸고 있는 것같이 아득한 게 쩔쩔맬 것 같았다.

(……)

“어떡허나?”

무얼 어떻게 한다는 것도 아니지만 그저 막연히 걱정스러웠다. 혜경이를 찾아가려고 애초에 마음먹은 것이요 또 그밖에는 도리가 없지만, 어쩐지 치마폭이 자꾸만 뒤로 끌리는 것 같고 발길이 떨어지지를 아니하였다.

 

채만식의 『인형의 집을 나와서』는 주인공 노라에게 가해지는 수난과 그것의 극복 과정을 담고 있다. 구재홍의 복수심으로 6년 만에 붉어진 차용증서 사건은 주인공 노라가 집을 나오는 계기로 작용한다. 노라는 자살을 해서라도 남편에게 끼칠 누를 막으려 했으나,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고 인격적으로 존중한 것이 아니라 인형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대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는다. 그리하여 가정을 지키기 위해 분투하던 노라는 남편이 강요한 인형의 삶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위해 집을 나온다.

물론 노라는 “남편의 전제를 벗어났으니”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여길 뿐, “무엇이 새로운 삶이요, 어떻게 해야 새로운 인생을 발견”할 수 있을지 생각할 수준에는 이르지 못한다. 단지 친구에게 몸을 의탁할 생각으로 집을 나온 것이다. 그런데 친구를 믿고 집을 나온 노라에게 한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사건이 벌어지던 그 시각, 김혜경은 옛 연인인 구재홍과 재회 후 살림을 합치게 되었던 것이다. 김혜경 역시 늦은 밤 자신을 찾아온 노라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 문제의 차용증서 사건은 “노라 부부가 앞으로도 그러한 비밀을 두고 지내면 언제 탈이 생겨도 생길 것이니 차라리 이 기회에 현이 알게 두어두었다가 뒷일이나 무사하도록 그 차용증서를 돌려보내는 것이 좋겠다”는 김혜경의 의견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노라가 집을 나온 것에 도의적 책임을 느낀 김혜경과 구재홍은 노라에게 직업을 구해주기로 약속한다.

 

“먹어야 사람이 살지?”

노라는 우선 혜경이에게 이렇게 말을 낸다.

“그렇지…… 사람이 먹잖구 사는 수야 있나?”

“먹구 살자면 돈이 있어야지?”

“그렇지.”

“돈은 벌어야 생기지?”

“그렇지.”

“그런데 내게 돈을 벌 재주가 무엇이 있수? 화장품 장사를 해보았지만 그걸 가지고는 밥벌이가 아니 되구, 그러니 할 수 없이 딴 도리를 차려야지.”

혜경이는 대답이 없이 잠잠히 노라를 바라보고 않아서 그 다음 말을 기다린다.

“그래 할 수 없이…… 자본 아니 드는 장수――카페 여급이 되었수.”

혜경이의 눈에는 차차차차 눈물이 괴기 시작하다가 그만 촤르르 쏟아져 내려온다.

“어쩌면 사람이 그 지경이 되었수.”

목이 메었으나 원망스러운 말씨다.

“나는 몰라…… 내가 카페 여급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허구 싶어서 헌 건 아니야…… 카페에서 밥그릇이 나를 불러갔지.”

 

집을 나온 노라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을 헤쳐나갈 수단, 재화 획득을 가능하게 할 직업이다. 그러나 노라가 중등교육을 받은 신여성이라는 것이 그 수단을 얻을 수 없게 된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당시 조선에는 고학력 여성을 위한 일자리가 적었으며, 여성은 주로 저임금 장시간 노동의 공장 생산직 업종과 서비스 업종, 성 산업 업종에 종사하게 되었다. 더불어 “신여성이라는 것은 저 서울이나 적어도 도회지에서 돈 있고 학문 있고 지위 있는 사람을 남편으로 두고 놀고 팔자 좋게 사는 한딴 부류의 여자”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고학력을 지닌 여성이라도 지인의 소개가 아니면 직업을 구하기 굉장히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노라가 화장품 판매원, 카페 여급, 인쇄소 노동자 등의 학력과 무관한 직업에 종사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며, 자아실현보다 당장의 생활, 생존의 문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다음은 내가 결혼을 해서 제가 후회를 하고 도루 돌아오고 싶어도 못 돌아오게 합니다.”

“또 그 다음은?”

“이게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이혼을 해주지 아니해요, 이혼을…… 왜 그러느냐 하면, 이번에 내가 하는 결혼을 완전한 결혼으로 하자면 위선 이혼수속을 마친 뒤에 해야 하겠지만 그러지를 아니한단 말씀이지요. 그래서 이번 사람더러는 잘 알어듣도록 일러 두었으니까 문제가 없고…… 그러니까 나는 결혼을 해도 임노라라고 하는 계집은 죽는 날까지 현석준이의 법률상의 안해로 있어야 합니다.”

“되려 좋답니다.”

“흥! 좋을지 나쁠지 두고 보라십시요. 지금 법률이 남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얻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남의 안해로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거나 그런 짓은 못합니다. 했다가는 싫여도 형무소에를 가야지요. 형무소에 갔다가 나와서도 남편이 이혼을 아니하면 여전히 그 사람의 안해로 있읍니다. 그러니까 이 앞으로 임노라라는 계집이 사내를 얻는다는 것은 형무소를 현주소로 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몇 번이고 그렇게 해서 감옥살이를 시키고래야 말 테니까요.”

 

그런데 문제는 노라가 단순‘신여성’이 아니라 가정과 남편, 어린아이들을 버리고 ‘가출한 신여성’이라는 사실이다. 사회는 가정을 버린 여성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지금 법률이 남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얻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남의 안해로 있는 여자가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하거나 그런 짓은 못합니다.”라는 현석준의 말처럼 가정 바깥 역시 가정과 다를 바 없는 가부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을뿐더러, 안락하고 풍요롭던 가정의 실체를 일깨워준 김혜경마저 노라에게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종용한다. 이처럼 노라는 “안해를 인형으로 여기고 여자를 노예로 생각하는 남편으로부터 노예가 아니요 한 자유의 인간이 되기 위하여” 가정을 나왔으나, 여성에게만 가해지는 사회적 억압과 차별적 시선을 견뎌야 할 상황에 놓이게 된다.

 

“흥…… 말만은 잘헌다…… 그렇지만 그렇게 기세 좋던 사람이 요렇게 거지가 되어가지구는, 더구나 필경은 내 지배 밑으로 다시 굴러들어온 게 참 구경다운걸.”

이 현의 승리자다운 조소에 노라는 안타까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으나 꾹 참고 퀄퀄하게 대답을 하였다.

“옳소, 그 말이 옳소…… 내가 당신의 가정에서 당신 한 사람의 노예질을 싫다고 벗어져 나왔다가…… 인제 다시 또 당신한테 매인 몸이 되었소. 그걸 보고 당신은 승리나 헌 듯이 통쾌하게 여기겠지만, 그러나 당신허구 나허구 싸움은 인제부터요. 내가 아직은 잘 알지 못허우만은 이 세상은 (中略) 싸움이라구 헙디다. 아마 그게 옳은 말인가 싶소. 그러니 지금부터 정말로 우리 싸워봅시다.”

 

이후 노라는 고향에서 오병택이 건네줬던 베벨의 『부인론』을 통해 각성한다. 노라는 “서문을 위선 펴가지고 어려운 대로 애써애써 읽어내려가기 시작하였다. 그러다가 몇 줄째에서 눈이 번쩍 뜨이게 머리로 들어오는 한 구절을 발견”한다. 이때 노라는 『부인론』의 여성은 노동자보다 먼저 등장하여 노예가 되었다는 구절을 읽고 공감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물론 노라가 베벨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성이자 노동자로서의 자의식을 새로이 구축하는데 『부인론』은 핵심적 역할을 하며, 노라는 비로소 ‘인형 임노라’에서 ‘노동자 임순이’로 거듭나게 된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를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체제가 자본주의라면, 사회주의를 학습한 노라가 ‘노동자 임순이’로 거듭나는 결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그러나 이러한 노라의 각성을 주체성에서 비롯된 자아실현으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노라의 각성이 주체적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은 사회주의 이념의 학습이 오병택에 의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라가 걷게 될 노동자로서의 삶은 남편에게 벗어나기 위한 새로운 모험을 암시하지만, 그것 역시 대타자의 욕망에서 또 다른 대타자의 욕망으로 귀의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3. 전근대와 제국의 욕망, 그리고 주체적 결단 : 『아름다운 새벽』의 경우

 

채만식의 장편소설 『아름다운 새벽』은 1942년 2월 10일부터 7월 10일까지 『매일신보』에서 연재되었다. 그리고 채만식은 연재를 앞두며 이 소설이 국민 문학에 대한 시험이라 밝힌 바 있다. 단행본은 해방 후인 1947년 박문서관에서 출간되었는데 단행본 끝에‘전편’이라는 표기가 되어있을뿐더러, 『채만식 전집』(창작과비평사, 1987) 4권에 수록된 내용 역시 1947년 단행본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소설의 후편이 발표되지 않았다는 오해를 줄곧 받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소설이 145회로 완결되었기 때문에 전편 분량만 확인해서는 『아름다운 새벽』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한 ‘시대적인 의욕’을 발견하기란 분명 어려울 것이다.

 

준은 강부인의 “농사는 천하의 근본인즉 기위 공부를 하량이면 농사공부라야 한다……”는 이상과 방침에 좇아, 열네 살 적 장가들던 바로 그해에 보통학교를 마치자 곧 근처의 ××농업학교에 입학을 했다. 이것이 사실은 강부인의 오산 제일장(誤算第一章)이었던 것이다.

열여덟에 농업학교를 졸업한 준은 스물한 살까지 꼬박 삼 년을 아뭏든 농사도 짓고 과수재배도 하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준의 체질, 성격, 취미, 재능 어디로 보든 전혀 상극진 방향이었다. 거기다 아낙 서씨와의 문제가 있고, 겸하여 모친 강부인의(준의 말을 빌면) 기승과 압박이 도저히 견디기 어려운 벌역이었다.

그 벌역을 면할 겸, 오랜 경륜을 이룰 겸, 스물한 살 되던 해 봄 준은 마침내 집을 뛰쳐나가 동경으로 달리고 말았다.

 

『아름다운 새벽』의 주인공 준은 열네 살이 되던 해, 자신보다 다섯 살 많은 서씨와 조혼을 한다. 그 결혼은 어머니 강부인에 의해 강행되었으나 준의 입장에서 전혀 싫은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준은 학교에 갔다가 신부의 연인에게 살해당한 어린 신랑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서씨가 있는 신방에서 도망친다. 그 후 준은 동경 유학을 떠나고 귀국 이후에는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시작하며 소설가로서 살아간다. 호랑이처럼 성정이 거친 어머니에게서 벗어난 준은 자유를 얻었다. 물론 고향의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준은 신방에서의 일이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고향에 갈 용기가 없다. 그렇게 부인 서씨는 신혼 첫날밤에 소박을 맞은 이래 이십 년째 독수공방하며 시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런데 준은 단순히 유년기의 트라우마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것이 아니다. 준은 생활의 어려움이 없어 고향에 내려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준에게는 외조모가 있다. 준의 외조모는 준을 굉장히 귀애하여, 자신의 전 재산을 외손자인 준에게 모두 증여한다. 외조모의 막대한 재산을 손에 넣은 준은 그 돈으로 동경 유학을 떠나고, 귀국 후에는 아파트를 구해 서울살이를 시작한다. 그에게 소설을 써서 들어오는 원고료는 용돈에 가까우며, 그는 소설가로서도 크게 노력하지 않는다. 고정 수입이 없어도 외조모가 물려준 재산으로 풍족한 생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부인의 “그놈이, 꼭 그놈이 돈이 없었어야만, 꼭 돈이 없었어야만 내게 와서 항복을……”라는 말이 아주 허황된 것은 아니다. 강부인이 준에게 아무리 자신의 아들로서 도리, 서씨의 남편으로서 도리를 지키길 요구해도, 준이 어머니와 부인이 있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응? 반드시 무슨 도리든지 도리가 있어야 않나?”

태평이 재촉하듯 다시 묻던 것이나 준은 여전 그대로 앉아서 유리창 너머로 머언 하늘만 바라다본다.

“여봐 준?”

“………”

준은 담배곽을 손 더듬어다 건성으로 한 개를 뽑아 물면서 그 침통한 기색과는 반대로 남의 말하듯 등한하게

“가정이란 것이야 나한테는 일평생 거주제한구역(居住制限區域)이 아닌가?”

태평은 이 딱한 벗을 무연히 건너다보고 앉아서 잠시 말을 잊어버린다.

준은 담뱃불을 붙여 물고 푸우 연기를 내뿜는다.

“여봐 준?”

“응!”

“내 말 듣고오…… 이 기회 결혼을 하도록 하자구?”

“………”

“응? 준?”

“………”

“여러 말 할것없이 결혼하도록 해애!”

준은 천천히 태평에게로 고개를 돌린다.

“버젓한 안해가 있는 몸이 결혼을 하다니?”

 

그러던 와중에 친구 오태평이 서울의 아파트로 준을 찾아온다. 대학 시절부터 친밀하게 지내던 오태평은 정치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준에게 자신의 사촌 누이 오나미를 소개해준다. 그리고 그는 준에게 이혼을 하여 이십 년 소박한 아내를 해방시켜 준 후, 자신의 사촌 동생과 결혼을 하라고 끊임없이 설득한다. 준은 오태평의 논리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오나미에게 마음이 끌리게 되어 결국 오태평의 계획대로 서씨와 이혼을 결심한다. 물론 그 이혼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오태평은 더이상 준을 설득하지 않는다. 중일전쟁 도중에 잠시 귀국한 오태평은 준에게 제국의 논리를 설파하던 중, 준이 아직까지 본처와 이혼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분노하여 하루빨리 이혼할 것을 강요한다.

그런데 오나미와 결혼을 하려던 준의 계획은 강부인에 의해 불발되고 만다. 강부인은 며느리 서씨를 향한 남다른 애정으로 준의 재혼 계획을 막은 것이 아니라, 전근대적 가치관의 소유자로서 신여성 오나미를 며느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준에게 당혹스러운 일은 이것뿐이 아니다. 태평양전쟁을 기점으로 준의 본처 서씨는 원인 모를 병으로 죽음을 맞고, 준은 박덕대의 딸인 박용순을 아내로 삼는다. 물론 그것은 준이 원하던 결혼이 아니었다. 단지 기생으로 전락한 딸에게 자살을 강요하는 박덕대를 저지하기 위함이었다. “준은 팔짱을 끼고, 아랫입술을 물고, 지긋이 서서, 저만침 땅만 내려다본다. 말리느냐 모른 척하느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했다. 심히 난감했다. 매 맞는 것을 죽고 사는 것을, 말리느냐가 아니다. 나아가 몸소 그, 영혼을 구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달렸기 때문이었다.” 준은 박용순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마지못해 입적을 시킨 것이다. 강부인은 구식 여성인 박용순과 준을 결혼시키는 문제에 있어 결혼의 당사자들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준은 박용순과 불행한 결혼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

 

삼일장(三日葬)을 치른 후에 그날 밤을 용순과 거처하던 방에서 새웠다. 박생원을 청해다 뒷일을 갖춰 부탁하였다. 박생원은 구태여 그럴 일이 무엇 있느냐고 사필귀정(事必歸正)과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을 다시 역설하면서 누누이 말렸으나 준의 결심은 동치 않았다.

휘엿이 밝는 새벽 준은 영원히 떠나는 행장을 챙겨놓고 수각으로 나미를 작별 갔다.

나미도 일찍 일어나 애기를 안고 마루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날, 마지막 보우!”

이렇게 내는 준의 말에, 나미는 놀라워하다 이내 태연한다.

준은 두 손바닥을 펴서 보이면서

“이 손이, 두 아내를 죽여서, 장사 지낸 손이 아니요? 그런 이 손으로 내가 행복을 다시 만진대서야, 진정 하늘이 내려다보실 노릇이 아니겠소?…. 부처님 앞에 이 손을 합장하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면서 여생을 마치던지…”

(………)

“이 손은 살손! 이 손이 가닿는데 불행이 있어!”

“영 그럼 가시구 아니오시겠어요?”

“나미나 내나 백발이 허어열 그때……, 나미나 나나 남녀(男女)가 아닐 그때 한 번 와서 만나리다!”

오월의 새벽은 맑고도 아름다웠다. 준은 집을 등지고 밭들길을 홀로 걸어나가면서

“내 영혼도 몸도 영원히 새벽처럼 맑고 아름다워지이다!”

하고 눈을 감았다.

 

결말에 이르러 준이 집을 나감으로써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인다. 표면적으로는 서씨와 박용순의 죽음에 책임을 통감하고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 그가 집을 나온 연유다. 하지만 아내였던 두 여인의 죽음이 준에게는 충격을 안겨줬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출의 유일한 동인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하기에는 갑작스러운 면이 있다. 무엇보다 두 여인에게 속죄하고자 내린 결정이라기에는 준의 시선이 변함없이 무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준이 지닌 무력감은 주체성의 부재와 관련이 깊다. 그리고 준의 의지와 무관하게 진행되었던 서씨와의 조혼, 오나미와의 연애, 박용순과의 재혼은 전근대적 질서와 제국의 질서를 거부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때문에 준이 종교로 귀의하는 결말은 강부인이 요구하는 전근대적 욕망, 오태평이 요구하는 제국주의적 욕망 그 어떤 것에도 동의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며, 준은 속세를 떠남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주체로 거듭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준은 처음으로 주체적 결단을 내렸다. 타인이 요구하는 삶을 수용한 것이 아닌 자신이 걸어갈 길을 스스로 택했다. 오나미의 만류에도 뜻을 굽히지 않을 만큼 준에게는 확신이 있었다. 전근대와 제국은 준에게 물질적 풍요를 보장해왔기에 주체성을 포기하고 기존의 질서에 순응한다면 준은 평생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준은 이 모든 것을 거부하고 모험을 선택한다. 따라서 주체성을 위해 자신에게 보장된 생활, 속세에서의 삶을 내던지고 고난이 예상되는 모험을 시도하는 결말은 준에게 대단한 결단이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준의 이러한 결단은 또다시 자신 앞의 문제를 회피한 결과를 초래한다. 우유부단한 준으로 하여금 서씨와 박용순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고, 헤어졌던 옛 연인 오나미는 준의 아이를 낳게 된다. 그런데 준은 오나미와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부인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집을 떠나갔다고 돌연 선언한다. 이것은 서씨와 박용순의 죽음에 속죄하겠다면서 오나미에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셈이다. 따라서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해결할 노력을 보이지 않는 준의 모험은 눈앞의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으로도 비추어진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4. ‘주체 없는 모험’과 ‘겨우 결단하는 주체’, 혹은 채만식의 젠더의식

 

지금까지 채만식 문학에서 예외적인 두 작품,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아름다운 새벽』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모험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채만식은 1930년대라는 시대적 한계를 넘어 여성에 대한 진보적인 인식을 담은 작품을 창작하였고, 1930년대 후반부터 194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억압된 상황에 놓인 작가나 지식인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러한 맥락 아래 『인형의 집을 나와서』와 『아름다운 새벽』에는 대타자의 욕망만을 욕망해야 하는 부조리한 현실에서 순응하지 않고 주체성을 위해 모험을 떠나는 여성과 남성이 그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두 소설의 모험이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채만식은 모험의 주체가 누구인지에 따라 다른 결말을 보여주었다.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노라는 가부장과 자본주의적 질서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판단을 멈추고 모험에 빠르게 뛰어든다는 점에서 굉장히 진취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가정을 ‘인형의 집’으로 인식하고 가출하는 순간을 제외하고, 노라는 단 한 순간도 주체적이지 못하다. 노라는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여 매 순간 ‘남성적인’ 김혜경과 상의하고, 김혜경이 자신을 떠나자 삶의 방향을 제시해줄 새로운 사람으로 찾는다. 그리고 김혜경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 오병택은 노라에게 사회주의를 통한 여성해방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체제를 전복시켜야 하고, 그렇게 되면 가부장에게 억압받는 여성들도 자연스럽게 해방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타자의 욕망에서 또 다른 대타자의 욕망으로 귀의하는 결과이고, 노라의 새로운 모험은 대타자의 욕망 안에서 이루어진, 주체성이 지워진 자아실현이 되고 만다.

그런데 『아름다운 새벽』 의 준은 전근대적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 억압을 받았지만,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한은 있었다. 조혼, 신식 여성과의 연애, 기생으로 전락한 구식 여성 구출 등의 사건을 비롯하여 준은 평소 자신을 둘러싼 여성들의 문제로 고통을 받는다. 하지만 첫날밤 신부가 있는 신방에서 도망쳤던 것, 강부인과 본처 서씨를 피해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아 준은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지 눈앞의 현실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했다. 단지 그는 용기와 결단이 부족했을 뿐이다. 그래서 결말에 이르러 준은 전근대와 제국적 욕망을 거부하는 동시에 자신을 괴롭게 만든 여성들의 문제 역시 완벽히 해소하는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처럼 모험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으나 여성의 잠재성은 여전히 믿을 수 없었던 상황 속 채만식의 두 모험 서사는 서로 다른 결말을 맞게 된다. 채만식에게 모험은 부조리한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모든 주체가 혼자의 힘으로 스스로 성장할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집을 나온 주체는 역경을 견디고 성장하지만, 여성 주체의 성장에는 남성 혹은 남성적인 인물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노라는 ‘봉건도덕의 노예’ 혹은 ‘상품경제 시대의 노예’라는 채만식 소설 속 여성 인물의 전형을 그대로 따르고 만다. 따라서 여성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규명해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갈 길도 바로 가르쳐 줄” 남성을 찾으려고 하는 ‘노라’, 그리고 여성을 위하는 마음은 있으나 여성이 지닌 주체성 혹은 발전 가능성을 믿지 못하고“영혼을 구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가 달렸”다며 고민하는 ‘준’의 모습은 식민지 시대 채만식의 내면 의식이 투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4학년 서윤비

 

 

 

 

 

 

 

 

 

 

 

 

 

<참고자료>

 

 

1. 기본자료

 

채만식, 『채만식 전집』1, 창작과비평사, 1987.

───, 『채만식 전집』4, 창작과비평사, 1987.

───, 『아름다운 새벽』, 『매일신보』, 1942.2.10.~7.10.

───, 『채만식 전집』10, 창작과비평사, 1987.

 

 

2. 학술논문

 

김영수, 「대동아공영권 이념에 대한 비판적 고찰」, 사회과학논총, 17, 2015, 61-87면.

나병철, 「식민지 시대의 사회주의 서사와 여성담론」, 여성문학연구, 8, 2002, 154-189면.

남상권, 「<인형의 집을 나와서>의 옥순형 인물 연구」, 국어국문학, 141, 2005, 229-260면.

배상미, 「여성의 시각으로 재현한 식민지 조선 사회의 시공간성: 채만식의 『인형의 집을 나와서』, 『탁류』를 중심으로」, 여성문학연구, 37, 2016, 93-128면.

양시내, 「입센 『인형의 집』 ‘이어쓰기’의 두 사례」, 카프카연구, 35, 2016, 127-148면.

장성수, 「일제말 채만식의 지식인 소설」, 국어문학, 32, 1997, 125-148면.

정선태, 「입센주의의 '번역'과 동아시아 근대성」, 오늘의 문예비평, 2001, 81-105면.

───, 「『인형의 집을 나와서』: 입센주의의 수용과 그 변용」, 한국근대문학연구, 3(2), 2002, 8-32면.

최유찬, 「『아름다운 새벽』의 알레고리 연구」, 한국학연구, 39, 2011, 49-80면.

 

 

3. 단행본

 

군산대학교 채만식연구센터, 『채만식 중·장편소설 연구』, 소명출판, 2009.

방민호, 『채만식과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 소명출판, 2002.

 

황주영 기자  wndud8608@kunsa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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